나는 구원받았는가?
나는 구원받았는가?
이 글을 통하여서 상당히 격한 표현들이 많이 사용될 것이다. 사실 요즘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나는 십일조의 축복. 믿는 자의 형통. 기도할 때 바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익숙해 졌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처세술’에 관한 설교. 시작할 때 말씀을 읽고 시작하고 교회에서 행해진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유명한 카네기 리더쉽 스쿨이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나 나올만한 이야기들이 설교 시간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선포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 믿음에 대해서는 앞으로 곧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이미 스스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완벽한 천국티켓을 소유하게 되었고, 더 이상 예수님은 필요없으며, 이제는 세상에 요구에 따라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조금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같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누가복음 17장 26~30절)
한번 기억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노아 홍수 심판 때에 전 인류 중에서 몇 명이 구원받았는가? 의인인 노아 식구 여덟 명만 남고 나머지는 다 심판을 받아 죽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는 몇 명이 구원을 받았는가? 의로운 롯과 두 딸 외에는 모두 심판을 받아 죽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불 심판 때는 얼마나 구원받겠는가?
인자의 때, 즉 예수님의 재림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의 본격적 심판 때는 소수의 의인 외에는 거의 전부가 죽을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천국으로 이르는 길을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라고 한다.(누가복음 7장 13절)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지금의 전세계의 기독교 인구들이 모두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또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 누구나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천국에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편 16~20절)
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 글 전체를 통하여서 격한 표현들이 많이 사용될 것이다. 이 표현들이 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상황이 훨씬 더 험악하고 위험하다.
이제부터는 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 계속하여 요구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또다시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이 자리로 불리워졌다. 언제까지 우리에게 이 기회가 주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우리에게 이 기쁜 소식, 복음을 주신 분은 목숨을 걸고, 아니 목숨을 내던지면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 그런데 받는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받고 있는가? 목숨을 걸고 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