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이야기

니고데모와 미켈란젤로

그을곰 2009. 7. 12. 03:11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미켈란젤로 작



미켈란젤로는 말년에 많은 피에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위에 있는 피에타인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양쪽에서 두 명의 마리아가 부축하고,
한 늙은 노인 한 명이 예수님을 끌어올리듯이 부축하고 있다.

사실 대개 피에타의 주인공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본인이 젊었을 때 만든
현재 피에트로 대성당, 방탄유리 속에 있는 그 피에타에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피에타는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는 노인이 한명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제자들 중의 한명, 특히 베드로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힌 그 날 밤에 예수님을 무려 3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던 자.
갓 죽으신 예수님 앞에 나타날 용기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사도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었다는 것은 요한복음 19장 26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그렇다면 저 피에타에 있는 저 노인은 사도 요한인 것일까?
하지만 몇 년 전에 문제가 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도 요한은 젊은 청년 거의 여자에 가까운 모습의 미소년으로 그려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라고 짐작하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저 노인은 현재 니고데모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그 니고데모. 
'유대인의 지도자'(요한복음 3장 2절), '이스라엘의 선생'(같은 장 10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그 사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과 유명한 문답을 한 그 사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 ~ 5절)

하지만 그 문답 이후에 니고데모의 행방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올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했던 니고데모였으니
아마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라다니지는 않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전해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제자는 될 수 없었고 청중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니고데모는 홀연히 등장한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39)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에 유대인의 적, 로마의 적으로 처형을 당한 것이었다. 유대인과 로마인, 서구 문명의 두 축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이 모두가 적으로 여겼던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적"으로서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인류의 적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등장한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제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드러내고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미켈란젤로 본인은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작품을 만든다고 스스로 주장했고,
그 작품들도 피에타, 시스티니 성당 천장화, 최후의 심판 등등 모두 성경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지만,

그 삶 자체는 그렇게까지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사실 돈과 명예, 그리고 본인의 예술욕에 헌신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말년이 되어
본인이 평생을 그려왔던 그 하나님을
작품의 소재가 아닌 인격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작품 속의 니고데모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켈란젤로 본인은 자신을 니고데모와 동일시한 것이다.

때를 놓친 제자, 
그 한을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말년 작품 속에 새겨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