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굴
토끼굴658 - 고향
그을곰
2013. 2. 9. 14:34
나는 고향이 없다.
물리적으로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은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따뜻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아니다.
헌법재판관님들께서 꼴사납게도 관습헌법으로 '수도'로 '태초부터' 정해져 있다고 '선고'해주신, 서울이라는 도시는 익명의 도시이자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도시이다. 낯선 사람들끼리 처음 마주하는 자리에서, 클리셰스럽게, 고향을 물어볼 때가 있다. 이 때 역시 고향이 서울이라는 말이 나오면(4분의 1의 확률이다), 리액션으로 그저 "넌 서울 사람같아." 따위의 또다른 클리셰로 마무리된다. 익명의 도시이기에 누구나 익숙하고 궁금하지 않은 도시가 서울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 동해가 고향인 사람, 광주가 고향인 사람들. 그들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내가 바라보기에 그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이 있다. 아마도 나는 평생 가져보지 못할 그 감정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실향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