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아홉수
20대의 아홉수라고 하는 29살이 되었다. 무지개의 색이 사실은 일곱 가지로 딱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내가 살아온 인생도 딱 29단계로 나누어지지 않을테지만, 29라는 숫자는 참으로 위태로워 보인다.9라는 숫자가 가지는 불완전성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아마도 아홉수라는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사용하는 음원 서비스의 검색창에 '서른'이라는 단어를 쳐 본 적이 있었다. (고)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너무 유명하다만, 박상민의 서른이면 이라는 노래는 이 검색으로 새롭게 알게 된 노래였다.
서른이면 나도 취직해서
장가를 갈거라고 생각했지
내 부모님과 내 집사람과
오손도손 살아갈거라고
돌아보면 다시 같은 자리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갔어
내 집살라고 모아둔 통장엔
몇 푼안된 돈만 있는
- 박상민, [서른이면]
이 노랫말의 화자처럼, 나는 서른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취직을 한 것도 아닌 나는, '학생'이라는 찬란한 타이틀을 가지고, 가까스로 내 먹을 것 정도만 벌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며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이런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냄비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어느 정도 서서히 실패해가는 인생같기도 하다.
어제는 술을 꽤 많이 먹은 탓에, 새벽에 갑자기 토하고 싶어졌다. 토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하루가 편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토하고 싶었는데, 화장실이 아버지가 자는 곳, 어머지가 자는 곳 모두와 가까이에 있어, 제대로 토할 수가 없었다. 숨죽이고 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있으니,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또 실감났다.
1월에 태어난 덕분에 내 동기들은 어느덧 서른이 되었지만, 그들도 딱히 설움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