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에 해당되는 글 2건

  1. 피에타와 나 2009.07.12
  2. 니고데모와 미켈란젤로 2009.07.12

피에타와 나

from 성화이야기 2009. 7. 12. 03:16
아래 포스팅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피에타는 사실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제작해
현재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바로 이 작품의 이름이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 작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혹은 비탄을 뜻하는 말인데,
대개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의미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상은
하나님이 정말 미켈란젤로한테 직접 영감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출애굽 할 때 성막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떠올랐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35장 30 ~ 35절 일부)

마치 천사가 조각한 것과 같은 모습.
하지만 조각인데도 너무나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마치 회화처럼 한 면밖에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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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차차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할 때,
한 추기경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제작하던 중 난감하게도 그 추기경이 죽어버렸고,
미켈란젤로는 이왕 제작하던 거 완성을 시켜서
피에타를 산 피에트로 성당 공터에 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 이 작품은 너무나 놀랍고 완벽한지라
결국 이 피에타는 산 피에트로 성당 안으로 옮겨진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버려버리는 바람에
누가 이 작품을 제작했는지 사람들이 고민하다가
결국 미켈란젤로가 아닌 엄한 사람을 찬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밤에 정과 망치를 가지고 성당 안으로 숨어들어서
마리아의 어깨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가는데
미켈란젤로는 문득 회한을 느꼈다.

아. 이 놀라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도 본인의 이름을 새기지 않으셨는데
나는 한낱 조각가로 내 이름을 위해서
밤에 숨어들어가 하찮은 내 조각에 이름을 새겼구나.

그래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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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에타는 수난도 많이 겪었다.

1980년대에 한 사람이 망치를 들고 달려들어서
이 마리아의 코와 팔을 박살을 낸 적이 았다.

그래서 지금은 산 피에트로 성당 방탄유리 안,
그것도 유리로부터 대략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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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필명을 바꿔왔었다.


처음에는 Sola Fides, 라틴어로 '오직 믿음'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Epic Architect, 그러니까 '서사 설계자'.
그리고 남들 모르게 '양치기 소년'이라는 필명을 썼었다가
로마 성 피에트로 성당에서 피에타와 마주친 후 
이제는 피에타를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물론 나의 피에타는 감히 원래 의미의 피에타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다른 각도로 보았을 때
마리아도 그리고 죽은 예수님도 사실은 살짝 미소짓고 있듯이




나의 삶과 글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슬픔, 비탄, 그리고 스산한 회한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에 훗날 미소지을 만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24세의 나이에 저런 걸작을 제작했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기고 싶었다. 2009년의 강신행도 24살이기 때문일 것이다.



덧,

피에타는 미켈란젤로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작했다.
아래의 작품은 프란츠 폰 슈튜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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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미켈란젤로 작



미켈란젤로는 말년에 많은 피에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위에 있는 피에타인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양쪽에서 두 명의 마리아가 부축하고,
한 늙은 노인 한 명이 예수님을 끌어올리듯이 부축하고 있다.

사실 대개 피에타의 주인공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본인이 젊었을 때 만든
현재 피에트로 대성당, 방탄유리 속에 있는 그 피에타에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피에타는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는 노인이 한명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제자들 중의 한명, 특히 베드로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힌 그 날 밤에 예수님을 무려 3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던 자.
갓 죽으신 예수님 앞에 나타날 용기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사도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었다는 것은 요한복음 19장 26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그렇다면 저 피에타에 있는 저 노인은 사도 요한인 것일까?
하지만 몇 년 전에 문제가 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도 요한은 젊은 청년 거의 여자에 가까운 모습의 미소년으로 그려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라고 짐작하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저 노인은 현재 니고데모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그 니고데모. 
'유대인의 지도자'(요한복음 3장 2절), '이스라엘의 선생'(같은 장 10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그 사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과 유명한 문답을 한 그 사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 ~ 5절)

하지만 그 문답 이후에 니고데모의 행방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올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했던 니고데모였으니
아마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라다니지는 않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전해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제자는 될 수 없었고 청중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니고데모는 홀연히 등장한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39)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에 유대인의 적, 로마의 적으로 처형을 당한 것이었다. 유대인과 로마인, 서구 문명의 두 축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이 모두가 적으로 여겼던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적"으로서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인류의 적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등장한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제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드러내고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미켈란젤로 본인은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작품을 만든다고 스스로 주장했고,
그 작품들도 피에타, 시스티니 성당 천장화, 최후의 심판 등등 모두 성경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지만,

그 삶 자체는 그렇게까지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사실 돈과 명예, 그리고 본인의 예술욕에 헌신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말년이 되어
본인이 평생을 그려왔던 그 하나님을
작품의 소재가 아닌 인격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작품 속의 니고데모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켈란젤로 본인은 자신을 니고데모와 동일시한 것이다.

때를 놓친 제자, 
그 한을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말년 작품 속에 새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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