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느헤미야서 이야기 2009.08.13
  2. 바벨탑 - 공허한 탑 2009.07.15
  3. 성 세바스티아노 - 박해 2009.07.13
  4. 피에타와 나 2009.07.12

느헤미야서 이야기

from 성화이야기 2009. 8. 13. 04:01

사실 느헤미야는 일반 교인들에게 그다지 인기있는 성경은 아니다.

느헤미야서를 배경으로 한 성화를
단 한개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가 창조되는 놀라운 모습을 그리는 창세기, 

열 가지 재앙으로 초강대국 이집트를 패닉에 빠뜨리며
한 영웅이 전 민족을 이끌고 나오는 출애굽기 초반(후반은…), 

짱돌 하나로 거인을 때려잡는 다윗의 이야기인 사무엘서

화려한,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헐리우드 영화같은 성경에 비해

포로기에 쓰여진 느헤미야는 수수하고
구약성서의 어중간한 위치에 있어

성경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인내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잘 읽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느헤미야서가 정말 그렇게 재미없는 성경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느헤미야서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살아있는 민초들의 이야기.

그들이 역사를 바꿔놓는 성경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느 8:1)

지도자들의 명령이나 권유에 따른 행동이 아닌
자발적인 백성들의 행동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 8:5)

눈을 감고 이 장면을 마음 속에 그려보자.
에스라가 성경을 펼 때에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말씀에 대한 경외심으로
몸이 저절로 일으켜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느 8:9 상반)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9 하반 - 10)

말씀을 읽어달라고 청하는 백성,
그들의 뜻대로 그 말씀을 읽어주는 성직자, 
말씀을 듣고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백성, 
그들을 달래며 여호와를 기뻐하자고 외치는 지도자.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계획하신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기록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느 8:13 ~ 17 일부)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고 울면서 죄를 자복하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실제로 말씀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지도자 느헤미야가 선동하거나 명령한 것도 아니다.
종교적 지도자 에스라는 그저 말씀을 읽었을 뿐이다.

백성들 각자의 그저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들을 움직였다.

말씀에 따르면 여호수아 시절부터
단 한번도 초막절이 지켜진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선지자 사무엘의 시절에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의 시절에도 지켜지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아있었던 초막절이

500여년만에

평범한 백성들의 손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단번에 
신앙의 영웅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믿음으로 산을 옮기고 
병을 치유하고 
말 한 마디로 전도하는 것을
당신에게 원하지 않으신다.

죄의 흔적조차 없는 완전무결한 삶을 
살기까지 바라지 않으신다.
 
그저 조금만 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사모하라고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들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변화시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말씀을 사모했던 백성들이
역사를 썼던 것처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이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는도다 (합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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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공허한 탑

from 성화이야기 2009. 7. 15. 02:27

빈 미술사박물관, 바벨탑, 브뤼겐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 11:4-7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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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학기는 계속 해서 쌓는 학기였다.

내 의를, 
내 선함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종교활동의 철저함을 차곡차곡 쌓아서 
높은 탑을 만들었다.

가득 쌓았다. 
그리고 마치 그에 대한 반대급부처럼
나에게는 좋은 일들만 기쁜 일들만 일어났었다.

하지만 올해 초 내 탑은 일시에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고
나에게는 절망과 공허, 갑작스런 무관심이 닥쳐왔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내게 가장 가까이 와 계셨음을 깨닫는다.

바벨탑을 부수시기 위해
친히 내려오셨던 하나님처럼

나의 탑을 부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오셨다.

그래서 그 다른 어떤 것으로
그 공터를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탑을 무너뜨리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무너지지 않는 집을 세우시기 위해서
나는 이 소중한 공허함을 견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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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 위 교회, 성 세바스티아노 무덤


성 세바스티아노는 
서기 300년전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 최전성기에 활동하였던 사람이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일찍이 로마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그 위치에서 의심을 받지 않고
순교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발각되어 
로마 디오클레시아노 황제는 그를 심문한 후 
무어인 사수에게 넘겨
그가 죽을 때까지 화살을 쏘도록 명했다.
그의 몸은 수십 개의 화살로 꿰뚫렸고 길거리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를 매장하러 온 사람들이 그를 묻으려고 만졌을 때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상처는 아물었지만 세바스티아노는 도망가기를 거절했다.
 
어느 날 그는 황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지키고 있다가 황제에게 다가가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한 황제의 잔인한 행동을 비난했다.
이번에는 사형 선고가 집행되어 그는 결국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 참고)
사도 베드로를 구분하는 키워드가 손에 쥐고 있는 천국의 열쇠이고,
사도 바울을 구분하는 키워드가 성령의 "검" 이듯이,

성 세바스티아노를 구분하는 키워드는 몸에 박혀있는 화살이다.
이 사실을 알고 서양의 미술관에 들어간다면
정말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성 세바스티아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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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해가 심각한 국가는 어디인가. 

“가장 박해가 심각한 곳 중 한 곳이 인도다. 
또 이슬람 국가 중 종교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곳이 파키스탄이다. 
에리트레아에서도 기독교인들이 혹독한 대우를 받고 있고 라오스도 상황이 어렵다......"

오픈도어 마크 버거 선교사와의 2009년 7월 6일자 인터뷰, 출처 크리스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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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인 한 명과 오래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인도계 회사 중국 지부에서 근무를 하다가
인도로 파견을 와서 일을 하고 있는 30대 남자였다.

하도 할 이야기가 없어서,
역사 이야기, 카메라 이야기 등등을 하다가
종교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중국이 완벽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Mission" 즉 선교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리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세상은 참 무섭다.
높은 사람들이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일반 민중은 그냥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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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와 나

from 성화이야기 2009. 7. 12. 03:16
아래 포스팅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피에타는 사실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제작해
현재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바로 이 작품의 이름이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 작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혹은 비탄을 뜻하는 말인데,
대개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의미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상은
하나님이 정말 미켈란젤로한테 직접 영감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출애굽 할 때 성막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떠올랐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35장 30 ~ 35절 일부)

마치 천사가 조각한 것과 같은 모습.
하지만 조각인데도 너무나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마치 회화처럼 한 면밖에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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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차차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할 때,
한 추기경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제작하던 중 난감하게도 그 추기경이 죽어버렸고,
미켈란젤로는 이왕 제작하던 거 완성을 시켜서
피에타를 산 피에트로 성당 공터에 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 이 작품은 너무나 놀랍고 완벽한지라
결국 이 피에타는 산 피에트로 성당 안으로 옮겨진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버려버리는 바람에
누가 이 작품을 제작했는지 사람들이 고민하다가
결국 미켈란젤로가 아닌 엄한 사람을 찬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밤에 정과 망치를 가지고 성당 안으로 숨어들어서
마리아의 어깨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가는데
미켈란젤로는 문득 회한을 느꼈다.

아. 이 놀라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도 본인의 이름을 새기지 않으셨는데
나는 한낱 조각가로 내 이름을 위해서
밤에 숨어들어가 하찮은 내 조각에 이름을 새겼구나.

그래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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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에타는 수난도 많이 겪었다.

1980년대에 한 사람이 망치를 들고 달려들어서
이 마리아의 코와 팔을 박살을 낸 적이 았다.

그래서 지금은 산 피에트로 성당 방탄유리 안,
그것도 유리로부터 대략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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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필명을 바꿔왔었다.


처음에는 Sola Fides, 라틴어로 '오직 믿음'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Epic Architect, 그러니까 '서사 설계자'.
그리고 남들 모르게 '양치기 소년'이라는 필명을 썼었다가
로마 성 피에트로 성당에서 피에타와 마주친 후 
이제는 피에타를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물론 나의 피에타는 감히 원래 의미의 피에타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다른 각도로 보았을 때
마리아도 그리고 죽은 예수님도 사실은 살짝 미소짓고 있듯이




나의 삶과 글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슬픔, 비탄, 그리고 스산한 회한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에 훗날 미소지을 만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24세의 나이에 저런 걸작을 제작했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기고 싶었다. 2009년의 강신행도 24살이기 때문일 것이다.



덧,

피에타는 미켈란젤로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작했다.
아래의 작품은 프란츠 폰 슈튜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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