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윤의 무덤 중 일부


인도여행은 힘들다.

우리같이 편하게 자라온 사람들
유럽여행조차도 힘겨워 했던 나에게

인도여행은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

인도는 너무 덥고 너무 더럽다.
인도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하게 살아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가슴 아파 하고 있을 때
인도사람들은 갑자기 불쑥 내 앞에 나타나
"독립기념일 기념이예요"
하면서 가슴에 인도국기를 달아주고
손을 내밀며 갑작스레 금품을 요구한다.

자아실현, 비전성취 따위 
거창한 목적이 아닌
입에 넣을 것을 찾기 위해서

일하고 구걸하고 사람을 속인다.

"마음이 어려워요"
따위 개소리는 할 수가 없다.

팔이 한 짝이 없어도
상처가 나서 여전히 피가 철철 흘러도

인도사람들은

일하고 구걸하고 사람을 속인다.
,


1. 들어가며

나름대로 한달 간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고,
짧게나마 뭄바이도 다녀왔다.
인도인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달 더 인도에 있게 되는데
조금이라도 생각이 바뀌면
이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생각이다.

지금 새벽 1시임에도 불구하고
잠도 자지 않고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느낀 바가 시간의 흐름에 조금이라도
왜곡되거나 윤색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걸로 뭄바이 여행기를 대신한다.
뭄바이에 볼 만한 것은 그다지 없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2. 인도인들에게 외국인이란.

인도인들에게 외국인이란 흔한 말로 물주, 흔한 말로 봉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는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그 나라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인도를 여행하면서
당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지갑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99%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100% 당신 돈이 목적이다.
인도인들은 그런 민족이다.

나를 깔끔하게 관광보낸 인도인..


이것을 알고 있는지...
인도에는 "외국인 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파는 "차이"(인도차)도
내국인들에게는 3루피, 외국인들에게는 그 2배 정도인 5루피.

택시나 오토릭샤를 탈 때도
내국인들에게는 순순히 미터기를 꺾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무조건 미친 가격을 부르면서 흥정을 하려고 하고,

잉여인간과 부정부패, 관료주의의 온상인 
인도정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유명한 타지마할에 들어갈 때에
내국인은 2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를 내게 한다.

외국인들, 특히 관광객들에게
"Sir, Sir"거리며 알량거리지만,
인도인들에게 우리는 돈덩어리에 불과하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다.

3. 나의 경험.

나도 사실 깔끔하게 당했다.
가게 한개 한개마다 들어가며 지체하는 쇼핑중독된 일행들에게 질려서
혼자 떨어져 나와 걷자마자

인도인 한명이 달라붙었다.
이름을 물어보고, 뭄바이는 어떠냐 하면서
마치 일상대화를 하듯이 접근을 한다.
그리고 나서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사는 것들을 대신 흥정을 해주면서 내 환심을 산다.

그리고 나서 차를 사겠다고 한다.
당신은 이 나라 손님이고 내가 주인이니까 사야 한다고 하면서.
순진한 나는 내가 사겠다고까지 하면서 따라갔다.

그리고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인도옷을 사 입어보는게 어때?
네가 인도옷을 입으면
인도사람들이 네가 인도에서 오래 산 사람인 줄 알고
외국인 가격으로 너에게 팔지 않을꺼야?
내가 좋은 데 아는데...같이 사러 갈래?

이 말은 다행히 쌩깠지만,

난 또 여기서 병신같이 캐쉬미어 목도리를 좀 사겠다고 했고
그러자 유명한 곳이 있다며 나를 열심히 데려갔다.

여기서 내가 실수를 한 것이
인도 사람, 현지인이 친구처럼 내 옆에 있으니까,
얘가 정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흥정하기를 게을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기억해보니
얘는 은근히 이쁘다 이거 질이 좋다 그러면서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가의 3,4배 바가지를 쓰면서
물건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얘는 그 캐쉬미어 가게에서 커미션을 받고
나를 소개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둘이서 콤비 플레이를 하면서 나를 혼미케해서
바가지를 제대로 씌워서 물건을 파는 것이지.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는
자기는 가난한 학생이고,
힌디어 회화 책을 팔아서 학비를 대는데,
먼저 책을 도매로 싸게 사야 하는데
나한테 1000루피(한국돈으로 2만원 가량)만 빌려달라고 했다.
자기가 팔아서 남는 이윤을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

달라붙는게 짜증나서
어쨌든 내가 쇼핑하는 것을 도와줬으니까,
밥이나 쳐먹으라고
100루피를 줘서 보냈다.(2천원)

그리고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랑 이야기해보고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완전히 얘한테
최연성이 옛날 이병민 레이스 관광하듯
관광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고로 뭄바이 시내에 있었던 5시간 동안
똑같은 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2명 더 존재했다.

4. 길거리의 거지들.

인도의 거지들은 독하다.
내국인들은 안 따라가고
외국인들만 보면 질질 따라온다.
왜냐하면 인도인들에게 외국인은 순진한 물주들이니까.


친구들을 만나고 혼자 집에 들어가게 되는 길이었다.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 앞에 여느 때처럼
거지들이 있고 특유의 제스쳐 "음식 좀 사게 돈 좀 줘"를 하길래
한국에서 여느 때 하던 것처럼
가난한 와중에도 돈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근처에 있던 거지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3,4명한테 돈을 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받자마자 그냥 휙 뒤돌아서 갔다.
너에게 볼 일 끝났다는 듯이.


방갈로르에서는 꽃을 파는 한 여자애가 나를 따라왔다.
특유의 "sir, sir"거리면서 따라오고
내가 안 산다고 안 산다고 막 하니까
내 허벅지를 막 잡으면서 구걸을 했다.

그래서 꽃 하나가 얼마냐고 물으니
10루피라고 했다.
지갑을 열어서 겨우겨우 10루피 짜리를 찾아 주면서
꽃은 필요없다고 하니까,
지갑 안에 돈을 보고서는
다시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허벅지를 막 잡으면서.

그렇게 100m를 계속 따라왔고
겨우 달려서 쫓아왔다.

와서 독일인친구한테 이 일을 말하니까,
나같았으면 줬던 10루피를 다시 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는 그것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손사래를 쳤지만 다시 만나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뭄바이에서는 한 거지를 2시간 동안 끌고 다닌 적도 있다.

내가 지금 너네 인도인들에 강도를 당했다. (사실상 강도)
그래서 너네 인도인들에게는 조금의 돈도 쓰고 싶지 않다.
가서 강도들한테 돈을 받아라.
지금은 현금이 없다라고 말하자

ATM 머신이 저기 있으니
니 credit card에서 돈을 뽑자고 말했다.
기가 찼다.


뭄바이에서 돈을 아끼려고 저녁을 10루피(200원) 짜리
아이스크림으로 떼우려하는데
조금만 어린 애가 아이스크림을 손으로 가리키며 하나 사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또 안타까워져서 습관적으로 사주니까
딱 받자마자 뒤돌아서 가버렸다.
어찌나 황당하든지.


5. 언더우드의 기도

이런 글을 썼지만,
이것은 나처럼 다른 순진한 이들이
피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거지
나는 이렇게 인도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인도인들에 대한 분노를 삭히면서

먼저 [파인애플 스토리]가 떠올랐고

이어서 [언더우드의 기도]가 떠올랐다.

지금 인도랑 옛날 한국이랑 그리 다르지 않겠구나 하면서...

그리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흥얼거리던 노래

주님처럼 섬기는 삶,
나는 없고
오직 십자가만 드러내는 삶

이라는 가사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도 나를 파송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나는 선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도 선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구나
깨닫게 되었다.

먹먹하다.

,

어제는 인도 전통 결혼식에 다녀왔다.
사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의 친구의 결혼식이다.
겸사겸사해서 주말이고,
또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어떨까 싶어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모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우리나라와 조금은 비슷하게
신랑이 말을 타고 등장한다든가하는 
다양한 세레모니가 많은 것같던데,
우리가 갔던 결혼식에는 딱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너무 늦게 결혼식에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청첩장에는 참고로 12시부터라고 써 있어서 11시에 도착했는데...

결혼식을 보면서도 사실 멍하게 있었다.
서양의 결혼식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다 생소했다.
도무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결혼식장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정자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뭔가 던지기도 하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장소 자체를 신성하게 하는 행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곧 신랑과 신부가 등장했다.

신랑과 신부가 중앙에 섰고 그 사이를 하얀 천이 한동안 가리고 있었다.

곧 천이 걷히고 감격의 눈맞추기를 한다음에

서로의 목에 꽃을 걸어주었다.
(사실 이 부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중앙 정자 위에 신랑과 신부를 수십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티비 화면으로밖에 볼 수가 없었다)


신랑의 손이 신부의 손을 받히고, 
신부의 손에는 구슬 하나와 잎사귀 하나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부모가 
그들의 손 위에 성수 몇 방울 (혹은 코코넛 물)을 떨어뜨렸다.
아마 이 행위 하나 하나에 무엇인가 의미가 있겠지.




그리고 새로운 부부가 손을 잡고 
제 제단 한 가운데에 있는 신령한 불을 일곱 바퀴 돌았다.
한 바퀴가 하나의 맹세를 뜻한다고 한다.


First step: To respect and honor each other
서로를 존경하고 영광스럽게 하기를.
Second step: To share each other's joy and sorrow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기를.
Third step: To trust and be loyal to each other
서로를 신뢰하고 충성하기를.
Fourth step: To cultivate appreciation for knowledge, values, sacrifice and service
지식과 가치, 희생과 섬김을 향한 감사를 계발하기를.
Fifth step: To reconfirm their vow of purity, love,  family duties and spiritual growth
순결의 약속, 사랑, 가족의 의무, 영적 성장을 재확인하기를.
Sixth step: To follow principles of Dharma (righteousness) 
다르마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Seventh step: To nurture an eternal bond of friendship and love
우정과 사랑의 영원한 연합을 품기를.

여러 곳을 조사했는데 조사하는 곳마다 이 일곱 가지 맹세에 대한 내용이 달랐다.
결혼 하는 부부들마다 자신의 일곱 가지 맹세를 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가 신랑의 얼굴에 흙같은 것을 발라주는 모습.


그리고 나서 신랑 여동생이 신부의 발을 씻기는 모습.

그나저나 이뻐서 결혼식 내내 눈에 띄었던 신랑 여동생.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그저 면식없는 외국인일수밖에 없어서
상당히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도, 신랑과 신부는 사진을 찍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었다. 고마웠다.
나름 인도결혼식에서는 외국인이 와서 축하해지면
자랑스러워한다하니 정말 그랬다면 좋겠다.
사실 나도 내 결혼식에 내 외국친구들이 온다면 좀 기쁠 것같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밥을 얻어먹었다.
어딜 가도 있는 결혼식밥 ㅋ
먹고 체해서 고생좀 했지만 그래도 참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결혼 축하한다고 
신랑 신부에게 말 못한게 정말 미안했다.

축하해요.

저 맹세들처럼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
오늘은 주말을 맞아서
내가 현재 있는 도시인 
방갈로르 시내에 있는 Buddha School이라는 초등학교에 갔다.

 
우리가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이랑 함께
게임도 하고 과일이름 받아쓰기도 하고 
춤도 가르쳐주고 하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인도의 좋은 학교들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학교는 조금 낙후되어 보였다.
책상과 의자들도 그다지 편해보이지도 않고,
컴퓨터실이 있긴 한데, 컴퓨터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다가
인터넷 연결은 물론 중요한 소프트웨어들이 깔려 있는 것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들은 컴퓨터로 그림판에 그림을 그리면서 놀거나
워드패드로 신문에 있는 영문을 따라적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꼬마들은 이미 영어를 잘 알아들었고, 또 영어를 말할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초등학생이
저렇게 영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서운 나라다.
 
회사 동료 인도인들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실력과 공부하는 환경은 그다지 관계가 없을 수도 있겠다하는 점이었다.



애들은 처음 찾아온 나한테도 너무나 호의적이었다.
계속 따라다니고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데도 이것저것 말하고
사진 찍자고 그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지금 완전히 탈진상태.
그리고 집에 갈 때에도 막 악수를 청하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말 끝마다 민망하게 "sir" 혹은 "ma'am"을 붙여서 나를 민망하게 만들고.
옆에 계속 팔짱을 끼면서 달라붙고.

귀여운 아이들.

얼굴색깔에 상관없이,
사는 환경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덕분에 사진을 찍을 때
가식적인 썩소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같다.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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