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오욱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전공이 같았던 동년배 학우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전공으로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도 전공 내 하위영역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수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한국교육학회나 분과학회에 정회원으로 또는 준회원으로 가입한 젊은 학자들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젊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젊은 교육학도였을 때,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문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학문적 업적으로만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맞습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있다”고 확신하십시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구직난을 호소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구인난으로 애를 태웁니다. 신임교수채용에 응모한 학자들은 채용과정의 까다로움과 편견을 비판합니다만, 공채심사위원들은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요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는 데에 더 힘쓰십시오.


● 학문에 몰입하는 학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젊은 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모형이 되어줄 스승, 선배, 동료, 후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따라해 보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면 됩니다. 학문에의 오리엔테이션을 누구로부터 받느냐에 따라 학자의 유형이 상당히 좌우됩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학문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존경할 수 없는 학자들을 직면했을 경우에는, 부정적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다시 말해서, 그 사람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면 정도(正道)로 갈 수 있습니다.


●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학자보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그렇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형으로 삼으십시오. 의식을 해야만 인식되는 사람은 일상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접하고 피할 수 없는 주변의 학자들 가운데에서 모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여러분이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 때,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있는 모형 학자들을 찾으십시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분이 훌륭한 학자에 가까워집니다.


● 아직 학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조속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학문은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매진할 리 없고, 매진하지 않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학계에서의 업적은 창조의 결과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은 게으름을 연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른 학자는 학문적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학계는 지적 업적을 촉구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읽고 쓰는 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학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글쓰기로 피를 말리는 사태는 학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읽고 씁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학자로서 적합합니다.


●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인관계를 줄여야 합니다.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학문에 투입하는 시간은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과 영합(zero sum)관계에 있습니다. 학문을 위한 시간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부가 보험설계사의 전화번호부처럼 다양하고 많은 인명들로 채워져 있다면, 학문하는 시간을 늘릴 수 없습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 학문 외적 업무에 동원될 때에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헌신하지는 마십시오. 젊은 학자들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여러 가지 업무―흔히 잡무로 불리는 일―에 동원됩니다.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보다 직위가 높고 영향력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학자들이 일하는 자세를 눈여겨봅니다. 잡무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에게 평생 직업을 제공하거나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기 싫지만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십시오.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될 일을 시작하는 절차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길일(吉日)이나 적일(的日)을 찾다가 실기(失機)합니다. 신학기에, 방학과 함께, 이 과제가 끝나면 시작하려니까 당연히 신학기까지, 방학할 때까지, 과제가 끝날 때까지 미루게 되고 정작 그 때가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새로운 변명꺼리를 만들어 미루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답니다(성경 잠언 26:16).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시 그리고 거침없이 많이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적기를 기다리다가는 아이디어를 놓칩니다. 사라진 아이디어는 천금을 주어도 되찾을 수 없습니다.


● 표절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오명이 됩니다. 표절은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표절에의 유혹은 게으름과 안일함에서 시작됩니다. 표절을 알고 할 때에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변명이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표절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모르고 표절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표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글쓰기에 엄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발표된 후에 표절로 밝혀지면, 감당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도서구입에 인색하고 음주나 명품구매에 거침없다면 학자로서 문제가 있습니다. 읽을 책이 없으면 읽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집니다. 책을 구입하고 자료를 복사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면 구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책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문헌들을 읽거나 가까이 두고 보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 새 책을 구입했을 때나 새 논문을 복사했을 때에는 즉시 첫 장을 읽어두십시오. 그러면 책과 논문이 생경스럽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읽을 때에는, 시작하는 기분이 적게 들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구입한 책과 복사한 논문을 도서관 자료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읽은 부분에 흔적을 많이 남겨두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반론이 생각나면, 그 쪽의 여백에 적어두십시오. 그것이 저자와의 토론입니다. 그 토론은 자신이 쓸 글의 쏘시개가 됩니다.


● 학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학회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손님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긍정적 모형들과 부정적 모형들을 많이 접해보십시오. 좋은 발표들로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실망스러운 발표들을 들을 때에는 그 이유들을 분석해보십시오. 학회에 가면 학문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학회에 가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 자극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지도교수나 선배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해주지 않음을 명심하십시오. 학위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조언은 학위논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와 도움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들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홀로서기가 시련이듯이, 학자로서의 독립도 어렵습니다. 은사나 선배에의 종속은 그들의 요구 때문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젊은 학자들이 스스로 안주하려는 자세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십시오. 논문을 쓰지 못하는 학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걸작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을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평가한 논문들과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논문을 쓰는 데 엄청난 압박을 느낍니다. 걸작에 대한 소망은 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걸작은 쉽게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걸작을 지향한 논문이라고 해서 걸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문을 쓸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논문들이 쌓여지면서 걸작과 대작이 가능해질 뿐입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곧바로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이 시작됩니다. 교수직을 구하려면 반드시 연구업적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연구보고서는 연구업적으로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저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번역보다 창작에 몰두하십시오. 번역은 손쉬워 보이지만 아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색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역했을 경우에는 지적 능력을 크게 의심받습니다.


● 학자가 되고 난 후에는 저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압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책을 찾을 때 다른 학자들이 쓴 책들만 보이면 상당히 우울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이 교과서와 전공서를 출판할 때에는 뒤처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자들이 젊었을 때부터 교과서 집필을 서두릅니다. 교과서 집필은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논문과는 다르게, 교과서 집필은 다른 학자들도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어서 표절의 가능성도 아주 높고, 오류가 있을 경우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자로서 최소 10년은 지난 후에 교과서 집필을 고려하십시오.


●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지 않더라도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학회에서 발행되는 정기학술지에의 게재 가능성은 50퍼센트 수준입니다. 까다로운 학술지의 탈락률은 60퍼센트를 넘습니다. 그리고 학계의 초보인 여러분이 중견·원로 학자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아이디어를 짜내어 논문을 작성한 후 발송했더니 투고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거나,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게재불가 판정을 한 심사평을 받을 수도 있으며, 최신 문헌과 자료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심사자를 만나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게재불가를 받은 자신의 논문보다 훨씬 못한 논문들이 게재되는 난감한 경우도 겪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투고해야 합니다. 학회에 투고하기 전에 학회 편집위원회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들로부터 예비 심사를 받기를 권합니다.


●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문 활동을 쉽게 생각합니다. “앉아서 책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은 소일거리처럼 책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논문작성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저도 논문을 작성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논문은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계에는 깜짝 놀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야 합니다. 논문은 새로운 것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점에 집착함으로써 낯선 분야에서 주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 논문을 쓰려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논문의 아이디어는 직감(hunch)에서 나올지 몰라도 논문 글쓰기는 분명히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입니다. 책상에 붙어 있으려면 책상에 소일거리를 준비해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컴퓨터는 최상의 제품을 구비하십시오. 프린터는 빨리 인쇄되는 제품을 구비하고 자주 인쇄하십시오. 퇴고는 반드시 모니터보다는 인쇄물로 하십시오. 퇴고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하듯 비판적으로 살펴보십시오. 논문의 초고를 작성했을 때쯤이면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류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작성하더라도 초고에는 오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 오류들을 잡아내려면 그 논문을 남의 논문처럼 따져가며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도 읽어야 하며, 중간부터도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래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학회에 투고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남의 글을 비판하듯 읽기 때문입니다. 논문심사자들은 심사대상 논문에 대해 호의적이 아닙니다. 이들은 익명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탈락률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에는 아주 냉정해집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지적 업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연구업적이 부족하면, 학계에서 설 땅이 별로 없습니다. 부족한 연구업적을 다른 것들로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떳떳하지도 않습니다. 쫓기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발간되는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관심이 끌리는 논문들은 복사하여 가까운 데 두십시오. 그 논문들을 끈기 있게 파고들면, 여러분이 써야 할 글의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젊은 교육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일상을 즐거워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학술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교육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45(3), 5-9, 통권260호/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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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서핑을 하다가 약간은 찡한 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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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시작된 실제적인 결혼 준비는 철저하게 다시 날 현실의 세계로 이끌었다. 통장 잔고는 날마다 마이너스를 쳤고, 그 동안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었으며, 당장 오갈데도 없는 신세의 내 처지를 완벽하고 확실하게 보게 되었다. 그 동안 어떻게든 도와주셨던 아버지도 하시던 일감이 끊기고 수입이 끊기셨다.


2000만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큰 돈인지 알게 되었다. 내년 1월에 계획 중이던 결혼 날짜는 신혼집 보증금을 구할 수 없어 4월로 미루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멋있고 예쁜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안의 자존심은 점점 상하고, 희아와 희아의 부모님에게는 점점 면목없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가난함이 비참함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날 계속해서 가난하게 하셨다. 


보증금이 없어 집을 못구하던 나에게 공동체의 지체 중 기동이가 자신이 알아본 부동산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25만원인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기쁘게 알려주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다음날 바로 부동산에 찾아가서 집을 보았다.


겉이 매우 허름한 작은 집이었다. 문은 알루미늄으로 된 얇고 약한 문이었고, 대문을 열자마다 바로 방이 나오는 구조였다. 볼품 없기 그지 없는 집이... 하지만 이상하게 감사했다.


부동산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의 사정을 아시고 집 주인에게 25만원인 월세마저 깍아 월20만원에 해달라고 부탁하시며 집 값을 낮췄다. 


그렇게 신혼집을 계약했다.


계약을 하며 집주인과 이야기하는데 돈이 급하게 필요해 월세 값을 할 수 없이 낮췄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이전에 살던 분도 1000만원에 월30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때마침 부동산에 그 집을 계약하고 싶다고 다른 곳에서 연락도 왔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집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500/20만원이라는 생각할 수 없는 가격, 기도하던 방 2개와 주방, 화장실도 안에 있는 집,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 희아 대학원과도 가까운 곳, 무엇보다 영국에서부터 강하게 마음에 들어왔던 후암동이라는 동네, 지하방도 아닌 1층의 방, 새롭게 정돈되어 있던 도배, 싱크대, 화장실.....


감사했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부터 내가 스케치북에 그려온 집 모양과 매우 닮은 집.

그렇게 후암동 골목 길가집이 나와 희아의 신혼집이 되었다.


-  David D.G. Kim(http://www.hitd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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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네이버 부동산에서 집값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는 것 치고는 꽤 큰 수입이 있어서 나름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는데 집값이라는 것은 아예 단위가 다른 돈이 필요했다. 


(신혼의) 첫 시작이 전세면 앞으로도 계속 힘들다는 말,

은행 대출을 받으면 갚느라고 허리가 휠 것이라는 말,

원래 결혼은 부모님 도움받으면서 해야 한다는 말,


등등이 가슴에 시리게 박히고 있었던 참에, 이런 글은 아예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만 보였다.


예전에 신앙이 깊었을 때 배우자를 꿈꾸며 기도하던 것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가난하게도 살 수 있는 여자'였다. 가난한 여자가 아니라, 가난하게도 살 수 있는 여자.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다지 sustainable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이로, 직접 경험으로, 간접 경험으로, 간단한 추론으로.


머리가 복잡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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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참 열심히 살았다


공 병우 (한글 기계화 연구인)


너는 내가 처음 만난 나의 비서

너는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나의 비서

너는 햇살같이 빠르고 정확한 천재 비서

나는 네 도움으로 열흘 할 일, 하루에 해치우니,

10년 걸려 할 일 1년에 하게 되었네.


나는 너 없이는 하루도 잠시도 일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게 되었네

지금은 진정 너 없이는

즐거운 나의 생활 할 수 없네.


(중략)


나는 여태껏 많은 비서들과 일해 보았지만

너와 같이, 일해 갈수록 깊은 정이 들기는 처음.

그래서 너는 진정 나의 첫사랑 애인과 같은 나의 비서


(후략)


이것은 내가 쓴 <너는 나의 비서>라는 시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로 하여금 감격에 겨워 시를 쓰게 해준 나의 비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팔십이 넘은 늙은이가 웬 주책으로 비서 자랑을 늘어놓느냐고 말할 사람들을 위해 먼저 얼른 내 비서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내 비서는 다름아닌 내가 개발한 “공병우 직결식 워드 프로세서”이다.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을 손수레나 달구지 타는 것에 견준다면 수동식 타자기는 자전거, 전동 타자기는 오토바이이고, 컴퓨터는 자동차였다. 그 자동차는 내 시간을 엄청나게 아껴 주었으니, 내가 어찌 내 비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글 기계화에 바친 정열


나는 평생 동안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까를 연구해온 사람이다. 그러자니 먼저 문자 생활에 드는 시간을 절약해야 했다.


그리하여 젊은 식자층에게 펜보다 컴퓨터가 훨씬 더 익숙한 물건이 된 오늘날로부터 무려 40여 년 전에 한글의 기계화라는 과제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섯벌식이니 네벌식이니 두벌식이니 하는 자판 체계가, 한글 자모의 원리를 헤아리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어서 힘도 들고 시간도 더 드는 비합리적인 자판 체계라는 결론에 이르러 한글의 원리대로 만든 세벌식을 쓰자고 주장하다가 반정부적인 인물로 여겨져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간첩과 같은 대접을 받기도 했고, 안과 의사이면서 생전 배워도 못 본 타자기니 컴퓨터니 하는 기계들을 가지고 연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내 신념에 비추어보자면 그 어느것 하나도 내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니, 나는 그야말로 내 정규 노선대로 살아온 셈이다.


내 정규 노선 기차인 매킨토시 컴퓨터에는 이런 말이 크게 쓰여 써 있다.


'시간은 곧 생명이다.'


내가 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으면 컴퓨터 화면에는 저절로 커다란 괘종시계 그림과 함께 이 경구가 뜬다. 쉬는 동안에도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해놓았다.


그렇다. 시간은 곧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시간을 아껴주는 모든 문명의 이기를 좋아한다. 크지 않은 내 방에는 컴퓨터, 팩시밀리, 모뎀 따위의 기계가 가득 차 있다. '공병우 박사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검약한 사람이라던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한 대에 몇백만 원이 넘는 기계들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기계값 비싼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보다.


컴퓨터는 사람들의 시간을 아껴준다. 옷치레, 겉치레에는 철저하게 돈을 아껴야 하지만, 컴퓨터로 문자 생활을 하고, 또 여러 다른 분야에 그 기계를 이용하여 시간을 아끼는 데는 돈 절약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내 방 안에 가득차 있는 기계들의 값을 치면 모두 천만 원이 넘을 것이다. 나는 이런 기계의 덕분으로 3년 전부터 서울의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한글 문화원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사무실 직원들과 전화, 팩스, 컴퓨터 통신으로 사무 자동화에 완벽을 기하면서,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이런 비싼 기계를 쓰는 나는 언제나 블루진 바지와 다 낡은 셔츠를 입고 앉아 있다.


옷은 세 벌만 있으면 산다


가끔 '옷이 날개다'라는 말을 하며 내게 옷에 좀 신경을 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보다는 오히려, '살아가는 데에는 세 벌의 옷이 있으면 된다'는 독일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일할 때 입는 작업복, 극장이나 식당 같은 곳을 출입할 때 입는 나들이옷, 파티에 초대받아 갈 때 입는 예복, 이 세 벌만 있으면 아무 불편없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별 불편을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로 말하자면 식당에 가서 외식하는 기회도 드물고, 집안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으니 내가 늘 작업복을 입고 지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중국 정부 고위직 사람들은 이른바 인민복을 입고 있는데, 나는 우리나라 정부 고위직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본받아야 된다고 느낀다. 물론 그이들과 우리의 옷 문화가 다르니 그렇게 똑같은 옷을 입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옷도 개발하기로 치자면 그만큼 간편한 옷을 만들어내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날마다 바꾸어 매야 하는 넥타이, 줄이 서게 다려 입어야 하는 양복 바지. 또 때묻으면 그때그때 빨아야 하는 하얀 와이셔츠까지, 그런 옷을 입는 사람이나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이나 모두 피곤케 하는 옷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이 화려하고도 복잡한 의생활을 간소화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옷을 차려 입는 일에 많은 시간과 신경을 써야 하니 그 또한 낭비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이렇게 시간, 시간 하는 내게도 돈을 아끼려고 시간을 낭비했던 시절이 있었다.


평양 의학 강습소 입학 시험 준비를 하던 때의 일이다. 시험 과목의 책을 사러 나는 신의주로 가야 했다. 멀쩡히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시험에 평북 의주 농업 학교에 재학중인 내가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해야 했겠는가.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나는 신의주에 있는 새 책이 너무 비싸다고 느껴 돈을 아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중국 안동현 도둑거리까지 가서 헌책을 사왔다. 그것도 차만 타면 두 시간에 왕복하여 사올 수 있는 책을, 걷고 배타고 하여 왕복 열두 시간만에 사온 것이다. 그러고도 책을 좀 싸게 샀다고 좋아라고 돌아왔으니 나도 그때는 돈보다 시간이 더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바보였다.


결혼식은 밤에 올리자


돈 아끼려 시간을 낭비하는 일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그것은 관혼상제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나는 관혼상제에 속하는 행사에 참석한 일이 나이 구십 평생 동안 손에 꼽을 정도인 사람이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몸이 약한 나를 걱정하여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못 가게 하신 것이 내 그런 습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내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그런 자리에 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혼상제에 들이는 시간으로 더 유용한 일들을 많이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관혼상제에 시간과 돈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


1953년에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나는 미국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이들은 결혼식을 주로 밤에 했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친척들끼리만 모여서 간단히 예식을 치르는 그이들에 견주어 대낮에 결혼식 하면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다 오라고 해서 폐를 끼치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는 듯하다. 사람이 백 년을 산다고 칠 때, 미국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삼백 년 산 만큼의 일을 하고 죽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도 덜 이용하는 데다가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쓰느라 오십 년 산 만큼밖에 못 살고 죽는 거 아닌가.


미국 사람들이 밤에 결혼식 하는 것을 보고 돌아온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결혼식을 밤에 하라는 제안을 했다. 그런 요지의 강연도 하고 글도 썼다. 그러는 나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청첩장을 받고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욕을 했다. 그렇지만 청첩장은 거의 날이면 날마다 날아오는데 욕 안 얻어먹겠다고 대낮에 환자를 놔두고 결혼식장에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한번은 어떤 의사의 딸 청첩장이 날아들었는데 식 올리는 시간이 밤으로 잡혀 있었다. 보수적인 그 양반이 어떻게 그런 혁신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하도 궁금하여 내가 알아보았다. 사정인즉, 그 양반의 사위 될 사람이 당시 연세대총장인 백낙준 씨가 소개해 준 남자였다는데, 신랑, 신부 될 사람들이 백낙준 선생에게 찾아가 주례 서 줄 것을 부탁하자 그이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나 결혼할 때에도 밤에 식 올렸지. 낮에 안 했네. 낮에 식을 올리겠다면 나는 주례 못 해주겠네.”


하는 수 없이 그이들은 백낙준 씨 주례를 받으려고 밤에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며칠 뒤 우연히 백낙준 선생을 뵙게 되었다. 나는 선생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정말 두 분은 그 옛날에 결혼식을 밤에 하셨습니까?”


“아, 그럼요. 미국 있을 때 밤에 식을 올렸습니다.”


나는 그때 '이분은 정말 선각자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로 백 번 떠드는 것보다 한 번 실천하는 일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권해도 따르지 않던 그 일을 백낙준 씨는 몸소 실천해 보임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파급시킨 것 아니겠는가?


그해 유해 봉환식에도 가지 않았다


장례식을 놓고는 할 말이 많다. 미국 사람들은 장례식도 딱 두 시간이면 다 끝내고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도 사흘이면 상을 치른다. 우리나라의 형편은 어떠한가? 보통 사흘장이고, 웬만큼 돈이 있다는 사람들은 오일장으로 자신들의 돈 있음과 권력 있음을 과시한다.


내가 안과 수련의를 거치던 시절에도 내 동료들은 누가 돌아가셨다, 누가 아프시다 하면 모든 일을 당장 때려치우고 그 자리에 갔고, 또 그래야 옳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거 저런 거 다 예의 차리고 참석하다간 언제 공부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러지 못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공부해야 했던 그때에 내가 남들처럼 여기저기 참석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면 나는 안과 의사가 되지 못했을 터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야 친척이 많지 않고 또 식구들이 이해심이 많아서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자기도 꼭 가고 싶어 가는 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팔남매의 둘째인 나도 참석하기로 들자면야 행사는 한도 끝도 없게 많았고 우리 집안 친척들의 행사도 누구집 못지 않게 자주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 자리에 가보지 못했다. 더 중요한 공부를 위해 불참했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이해하시리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요즘도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얼마 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서재필 박사의 유해 봉환식이 있을 때에도 나는 가지 않았다.


최근에 일본에서 온 내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일본에는 백 퍼센트 화장을 해서 뼛가루를 바다에 뿌려버리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화장이 불효니 아니니 쑥덕거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교수나 변호사와 같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화장을 해서 어디에 보관하는 것도 너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그 화장한 뼈를 바다에 뿌리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망 사실은 한 달 뒤에 알릴 것!


나는 미리 만들어둔 내 유서에 이렇게 써 놓았다.


시체 중에서 조직 또는 장기를, 다른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적출한 후 나머지 시체는 병리학 또는 해부학 교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의과 대학에 제공할 것.

위와 같이 할 수 없을 때에는 사후 24시간 이내에 화장 또는 수장을 한다. 만약 법적으로 화장 또는 수장이 불가능할 때에는 가장 가까운 공동 묘지에 매장한다. 단, 매장할 때에는 새 옷으로 갈아 입히지 말고, 입었던 옷 그대로 값이 싼 널(관)에 넣어 최소 면적의 땅에 매장한다. 현 거주지로부터 100킬로미터 밖에서 사망하였을 때에는 가급적 현장에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한다. 여행 도중 바다나 강물에 익사하였을 때에는 수장으로 삼고, 시체를 찾아내지 말 것.

죽은 지 1개월이 지난 후에 가족, 친척, 친구에게 사망 사실을 점차 알릴 것. 만일 매장이 되었을 경우에는 화장한 것과 같은 경우로 알고, 누구에게나 묘지의 소재지를 알리지 말 것. 화장을 하였을 때, 남은 재를 몽땅 버리고, 조금이라도 어떤 곳에 남겨두지 말 것.

이 유서는 1987년 미국에 있을 때 만든 것이다.


내 유서를 읽은 어떤 친지는 내 자손들이나 다른 후세인들에게 내가 한 일의 의미를 알리고 그것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도 묘지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만약 그럴 돈이 있다면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과 상자 아홉 개로 침대를 만들고


이처럼 시간을 아끼느라 행했던 많은 일들 때문에 당했던 비웃음은 이루 말로 다 할 수도 없다. 1954년 미국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했던 집안 개조 때문에 나는 많은 말들을 들어야 했다.


내가 미국식 집 구조에서 본 것은 합리와 편리였다. 그이들은 침대라는 것을 방에다 들여놓아 아침-저녁으로 이불 갤 필요가 없게 해놓았고 수세식 변소를 집안에 두어 볼 일 보느라 변소 때문에 집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절약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 구조가 매우 편리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아이들 방에 사과 상자 아홉 개를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 침대식으로 만들어 놓고 절대로 개지 못하게 했다. 또 변소를 방안으로 들이고, 부엌에서 수돗물이 나오도록 개조했다. 부엌과 안방 사이에 구멍 하나를 뚫어 음식을 그 사이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든 것도 그이들의 집을 보고 배운 것이었다.


요즘만 해도 너무나 당연시되는 이런 일들을 처음으로 했다는 이유로, 아내는 동네 창피하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고, 친구 부부는 부엌이 마치 중국 호떡 굽는 부엌 같다고 비웃었다. 중국 호떡이 아니라 개떡 굽는 부엌 같으면 어떤가. 나는 내 생명과 같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


화장실에 들여놓은 가스 레인지


지금도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우리 집 이층에는 화장실 안에 가스 레인지와 식기들이 있다. 나는 주로 이층에서 아침, 점심을 스스로 만들어 먹고 저녁만 아래층 둘째아들 내외와 같이 하는데, 이층에는 부엌이 따로 없어서 물을 편하게 쓸 수 있는 화장실에 간이 싱크대와 가스 레인지 등을 놓아야 편리하기 때문이다. 한번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배치해 놓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대개들 집안을 둘러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니 내가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간이 싱크대 위에는 그 동안 내가 사다먹은 요구르트 병이나 두유팩 따위가 가득 쌓여 있다. 요즘 그런 음료의 용기는 내용물 먹고 부담없이 버리기에는 너무나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재활용을 위해 그렇게 모아 둔다. 그뿐만 아니라 입만 한번 닦은 휴지는 화장실에서 다시 쓰기 위해 모아 놓고, 아무리 작은 종이 조각이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잘 분리해 모아 둔다. 그런 것들을 보고 사람들은 '저렇게 종이 조각 하나까지 모아둘 정도이니 물건 하나 살 때도 이만저만 까다롭게 흥정하지 않을 거다' 하는 엉뚱한 오해를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상거래를 할 때 에누리없이 사는 것이 내 오랜 인생 지침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숫대야 하나를 살 때에도 장사와 이러쿵저러쿵 흥정을 하여 물건값을 단 십 원이라도 깎지 않으면 집안 경제가 당장 망하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십 원, 이십 원 아끼느라 버리는 시간은 다 어떡하고? 꼭 받을 값만 정가로 매겨 놓고 팔면 사는 사람도 깎을 생각을 않고 서로 시간 절약하여 좋을 터인데 참으로 딱한 일이다.


옛날에는 심지어 세금을 걷는 세무서에서조차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해방 직후, 세금 낼 때가 되었을 때에 나는 '제대로 세금 내어 나라 살림을 튼실하게 꾸려 나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아주 정직하게 납세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재벌급을 제쳐놓고 서울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되었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납세 신고를 속여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은 세금을 납부한 뒤에 세무서에서 제멋대로 매긴 '인정 과세'가 다시 날아들어 어리둥절해 하면서 알게 되었다. 새로운 과세 쪽지가 날아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사람들이 제대로 세금을 안 내니 세무서 쪽에서도 국민들을 못 믿고 있다는 뜻 아닌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이런 가장 기본적인 믿음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또다시 고지서를 발부하고 다시 걷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간 낭비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팩시밀리는 놔두고 얻다가 쓰냐?


말을 애매하게 하여 시간 낭비를 시키는 사람들도 나는 싫다.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해주면 좋을 것을 이리 빙빙, 저리 빙빙 돌려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게 한다. 그리하여 그 사람 말의 진정한 뜻을 알려면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약속을 하더라도 미리미리 해서 서로 자신의 스케줄에 영향이 없도록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데 하루나 이틀 전에 불쑥 말을 해놓고 무작정 찾아온다던가 하는 일들은 정말 몹쓸 습관이다. 미국에서는 1년이나 2년 뒤의 연극 공연을 미리 예약한다거나 레스토랑에 전화로 먼저 예약을 하고 식사하러 가는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가까운 친지의 급작스런 방문은 또 그렇다고 치자. 시간 관리를 가장 잘 해야 할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그런 기본적인 예의와 도리를 모른다.


작년 한글날 무렵의 일이다. 한 방송국에서 어느 날 전화를 걸어 날마다 한 시간씩 방송국에 나와 인터뷰 녹음을 해달라고 했다. 나와 한 인터뷰를 가지고 한글날 특집 방송을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이들이 그 전화를 한 것은 나와달라는 날 닷새 전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글날 특집 방송이면 꽤 중요한 것일 텐데, 적어도 몇 주 전에는 전화를 했어야 되는 것 아니오? 그리고 나 같은 늙은이가 그 방송에 나가서 말을 하면 말소리가 똑똑치 못해 청취자들이 잘 못 알아들을 것이니 내가 쓴 책이나 자료들을 읽어보시고 원고를 만들어 아나운서가 발표를 하게 하시오.”


그러나 그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꼭 내가 나와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응하기로 한 나는 며칠 전에라도 내게 할 질문들을 적어서 팩시밀리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래야 요령 있는 답변을 준비해 갈 수 있을 거 아닌가. 하지만 그이들은 막무가내로 나와달라고 하여 결국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나가 인터뷰에 응해야 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은 '문자 생활을 못하는 이들'이라고 여긴다. 우리에게는 의사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는 문자가 있고 그 문자를 또렷이 전해주는 팩시밀리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는데, 왜 그것을 사용할 생각을 않는 것일까? 그런 합리적인 사전 준비는 소홀히 하면서 마냥 서두르기만 하는 그이들의 일하는 방식이 나는 너무나 안타깝다.


고집쟁이라는 말이 좋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시간을 절약해라, 합리적으로 생활해라, 세벌식 한글 자판을 써라 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내게는 '고집불통'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내게 이 말이 붙게 된 데에는 유래가 있다. 오래 전에 한국일보사에서 고집쟁이 열 명을 뽑아 매주일마다 한 사람씩 신문에 소개했다. 그때 1위가 이승만, 3위가 최현배, 내가 6위로 뽑혔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괴팍한 분위기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는 이 말이 나는 좋다. 왜냐하면, 고집불통이란 말은 신념을 가지고 자기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고, 나는 스스로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그 말이 '너는 참 열심히 살았다'고 칭찬하는 훈장과 다름없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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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박근혜… 아니 새누리당… 아니 한나라당은 또 승리했는가?

어쨌든 대선은 끝났고, 결국 또 대통령은 한나라당 기회주의 세력들이 차지하였다. 멘붕이었다. 어째서 박근혜같은 사람을 지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향수로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지율을 보니 그것이 아니었던 것같다. 이번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의 근원은 뿌리깊은 지역주의 덕분이라고 소설을 써 보기로 한다. (소설이니까 너무 까지 마시길)


개표 방송을 보면 대구와 영남에서 한나라당 몰표, 광주와 호남에서 민주당 몰표가 나와 비등비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가 않은게, 인구수가 심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에서 경상도 사람들이 대통령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여기서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은 경상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경상도를 근거로 하여 서울이나 경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이다. 2011년 인구 기준으로 TK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인구는 1300만명, 이에 반해 호남+강원+제주 인구는 다 합쳐도 700만명에 불과하다. 이 인구비율을 이용하여 보정한 서울과 경기에서의 경상도 출신 인구는 1000만명. 그리하여 총 경상도 사람의 수는 2300만명이 되며, 이 중에 75%가 투표하고 75%가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면 1300만표가 된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받은 표인 1577만표에서 충청과 호남을 제외한 표인 1377만표에 대략 6% 차이로 거의 근접한다. 간단한 계산이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의 대표로 대선에 나오는 것만으로 바로 1000만표를 깔고 대선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리고 비경상도 사람들로부터 100~200만 표만 얻으면 바로 당선될 수 있는 것이다. 한번 득표율의 역사를 살펴보자. 17대 이명박 1100만표, 16대 이회창 1100만표, 16대 이회창+이인제 1400만표, 15대 김영삼 1000만표(정확히는 997만표)였다. 한나라당에서 나온 후보는 계속 1000만표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16대 때는 이회장과 이인제가 분열했기 때문에 어부지리로 김대중이 이긴 것이고 둘 중 아무로나 단일화가 되었어도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17대 때는 노무현이 경남 출신이라는 점과 지역구가 부산이였다는 점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고 2위였던 이회창은 1144만표를 받아, 노무현이 겨우 60여만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투표하는 기준은 1) 한나라당 사람이냐? 2) 경상도 사람이냐? 딱 이 두 가지 뿐인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 75퍼센트의 투표율을 넘기고도 박근혜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끝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일단 1990년~2020년도의 우리나라에서 비한나라당 세력이 정권을 잡으려면, 한나라당이 분열되거나, 승리가 너무 확실해서 경상도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고 본다.


18대에선 문재인&안철수라는 진보에서 낼 수 있는 최강 카드가 동시에 나왔고, 이로 인하여 경상도 사람들은 굉장한 위기감을 가졌던 것같다. 이러다가 한나라당이 정권을 놓치면 안되는데… 하는. 다시 말해 비한나라당 세력이 강하고, 똑똑하고, 국민을 위할수록, 경상도는 결집하여 한나라당 세력에 표를 몰아준다. 한나라당 후보의 자질은 조금도 상관없다. 김영삼이 경제를 다 말아먹고 IMF 시대를 열었을 때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탄핵 역풍이 불었을 때도, 이명박이 온갖 비리에, 사대강으로 낙동강을 녹조라떼로 만들었을 때도 오히려 경상도는 결집하였다. 한나라당이 뻔하게 실수를 했을 때 우리(경상도)가 표를 안 주면, 우리 귀요미들 한나라당이 정권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


그래서 박근혜가 이번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호남당이라고 욕하는 그 민주당과 진보세력들에서는 노무현 때부터 문재인과 안철수까지 3명의 대선후보를 모두 경남 출신으로 내놓았다. 경상도 사람들은 비한나라당+비경상도한테는 절대로 투표를 안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론은 비한나라당의 비영남 후보가 당선이 되면 바로 깨진다. 하지만 내 생각에 최소 앞으로 20년간은 안 깨질 것같다.


그리고 나.

일단은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뉴스앱들을 지웠다. 팟캐스트 방송들도 한동안은 올라오지도 않겠지만, 나도 듣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는 옳고 그름, 상식과 비상식, 진실과 거짓, 헌신과 사리사욕의 문제가 아니라, 경상도와 비경상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대선이나 총선이 오면 희망을 가지겠지만 비한나라당 지지자로 산다는 것은, 한화팬으로 사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차라리 야구는 바로바로 경기가 있디만, 대선이나 총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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