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이번 수양회를 생각하면서, 어떠한 망설임도 생기지 않았다.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었다.
작년 수양회 때 귀중한 휴가를 내면서까지 나왔지만 하나님과, 그리고 지체와의 관계 악화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고, 그래서 마지막날 새벽에 도망쳐나왔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였다. 은혜를 많이 받고 나에게 큰 도전을 준 수양회(2003년, 2006년)가 있는가하면, 은혜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만 악화되어 돌아온 수양회들(2004년, 2005년, 2007년)도 많았다. 그래서 수양회에 은혜를 받거나, 안 받거나 하는 것은 내가 수양회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양들을 챙기는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리고 최소한의 기대감, 그리고 벌써 6번째 수양회라는 매너리즘을 가지고 등록했다.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새친구반 부조장이라는 직책이었다.
사실 예전부터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당연히 시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회관 소기도회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지호나 삭이같은 아이들을 시키려고 했지만, 지호는 회장이고, 삭이는 4학년이 아니라, 내가 어쩔 수 없이 땜빵용으로 들어가게 되는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한다. 나에게 자격이 없는 것은 알지만, 나같은 무능한 자에게 귀한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과 마주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알지만, 그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하나님을 새로 믿고 감격하는 새 영혼들을 너무나 보고 싶었다.
기대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생겨났다. 나의 부덕함으로 인하여 새친구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실망해서 하나님을 안 믿게 되면 어떠나... 나의 참을성없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아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방해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정말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 자격없는 거 알아요. 하지만 하나님. 저같은 놈 보지 마시고, 이 아이들, 이 귀한 아이들, 하나님 믿고 싶어하는 이 영혼들. 그래서 이곳까지 따라온 영혼들. 절대로 그냥 보내시면 안되요. 꼭 하나님 만나고 돌아가게 해주세요. 주님. 제발 절 보지 마시고, 아이들을 봐주세요..."
정말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았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성격테스트도 했고, 최대한 물풍선을 잘 받아내는 게임에서 우리 조 혼자만 물풍선을 서로 던지며 싸우다가 실격하여 간사님한테 혼나기도 하고, 내 방에 모여서 부르마블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레크리에이션 1등도 했고, 포인트 게임도 3등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모든 프로그램들에 놀랍도록 집중했고 자기들끼리 서로 챙겼다. 누가 오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먼저 전화해서 나에게 말해주었고, 항상 반갑게 맞아주었다. 메시지 시간에는 정신줄은 이미 놓아놓고도 눈을 버럭 뜨고 말씀을 들었다. 말은 참 많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조였다. 너무나 고마웠다. 최고의 조원들을 만났다. 평생의 내 보물들
너무 착했지만 자기 안에 있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던 '착한' 정이.
묵묵하고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해 주었고, 문자로 나에게 감격의 고백을 날린 '성실한' 진욱이.
누구보다 활발해서 분위기를 주도했던, 그리고 닭싸움으로 전국구 스타가 된 내 '친동생'먹은 혜진이.
인기척이 없어 돌아볼 때마다 정줄놓고 눈을 부릅뜨고 말씀을 경청하고 있던 '꽃미남' 원준이.
나랑 조장님이 미쳐 손잡고 기도해주지 못하는 지체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던 '동역자' 성훈이.
처음에는 멍때리고 있다가 내가 놀릴 때마다 항상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때리려 한 '귀여운' 정아.
초반에 나를 이름 대신 '서울대'라고 불러 내 머리를 아프게 했던, 그러면서도 형형하면서 계속 따라다녔던 내 '아들' 성일이.
그리고 누구보다 부족한 부조장 때문에 정말 많은 시간을 기도로 채우셔야 했을 '고마운' 현주간사님.
셋 째날에 7명 중에 2명을 제외하고는 다 calling 시간에 결단하고 일어났다. 99마리의 찾은 양보다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마음이 나에게도 생겨났다. 그 두 사람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졌다.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고, 결국 넷 째날에 모든 우리 새친구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였다. 짧은 안도와 함께 너무나 큰 감격이 찾아왔다. 여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마지막 밤 간사님의 인도에 따라 조장들과 부조장들은 강단에서 내려왔고, 아래에 내려와서 초를 들고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자님들이 아이들에게 올라가서 그들은 앉아주고 격려해주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저 목자님들은 얼마나 기쁠까... 고작 4일동안 지켜본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은 게 이렇게나 기쁜 데 최소 한 학기동안 지켜본 목자님들의 기쁨은 얼마나 클까? 그리고 저 아이들의 인생의 시간만큼 태초부터 지금까지 무한대의 시간만큼 이들을 기다린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클지.
"하나님 정말 기쁘시죠? 저도 너무 기뻐요."
펑펑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수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하여 있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무엇인가가 안 풀렸던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과 아픈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환학생 장학금 탈락, 과외비 지급 문제로 과외 부모와의 갈등, 부모님과의 갈등, 대학내일 기자 지원 탈락, 이제 겨우 나에게 정을 붙인 우리 중1 여자아이들을 새로 오신 선생님께 인수인계하는 일. 20일 가량 남은 출국......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은 사실이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장 17절, 18절)
세상에 썩어진 것들에 내 마음이 상하지 않을만큼,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만큼,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컸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다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날이다. 그 아이들이 예수님 믿은 감격을 고백할 때, 심장이 터질 뻔했다.
많이 떠들고 다녔지만 내 꿈은 교수가 되어 가난한 나라에 가서 그들을 섬기며 사는 일이다. 그런 고상해 보이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어느 궃은 곳에서든 평생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다. 이것이 역시 내 사명이었다. 다른 사소한 즐거움은 나를 진심으로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양회에 가기 전에 여러가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서적들을 읽으면서 기독교를 방어하는 공부들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 보다 한 영혼. 예수님을 기뻐하는 한 영혼이 가장 큰 증거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다. 평생 못 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