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프랑스 파리.
우리[악마]의 대의가 가장 큰 위험에 처할 때는
한 인간의 우리의 원수[하나님]의 뜻을 행할 의욕이 없는 중에도 의지를 보이며
그의 흔적이 다 사라져 보이는데도 우주를 올려다보며
그에게 왜 자기를 버렸는지 따지면서도 여전히 순종할 때이다.
- 스크루테이프,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중에서
스타벅스, 프랑스 파리.
부끄러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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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렇게 찾아온 천사는 마리아에게 난데없는 소식을 전합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지난 예배 시간에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같이 아이를 선택해서 낳는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면 과연 무사히 태어나실 수 있으셨을까? 현대판 마리아의 뱃속에서 비명횡사하시지는 않으셨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마리아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 천사의 등장에 비명 한 번 질러줬을 것이고, 또 앞으로 아들을 낳는다고 했을 때에는 기절이라도 하지 않았을까요? 천사가 저한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세상 사람들이 나를 더러운 여자로 볼까봐 하는 걱정, 그리고 정혼자 요셉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 부모님에게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걱정 등으로 천사의 말 따윈 들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계속 울어서 주님의 동정심을 살려고 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릅니다.
“할렐루야 주님. 저는 몸이 약해서 말입니다”
혹은
“하나님 왜 접니까? 주님 저 녀석을 쓰소서. 저 녀석이 이 일에 더 적합합니다. 보십시오 쟤가 더 애도 잘 낳을 겁니다.”
혹은
“주여, 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하시면 안됩니까? 1년 후에 다시 오소서”
“주님, 저를 사랑하신다는 분께서 제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를 골통먹이시려고 이러시는 것입니까?”
등등등.
마리아는 반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에 남아서 순종의 표본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영원히 남을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러고 보면 성경은 뛰어난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약한 자들의 작은 ‘순종’들이 이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쇠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상징이고, 늘그막에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인 모세에게 적국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전 민족을 이끌어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40년동안 양만 친 노인에게 일본총독부에 가서 조선민족을 독립시키라는 이야기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전쟁에 잔뼈가 굵은 군인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돌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적이 뻔히 내려다보고 있는 성 주위를 도는 것은 전술적으로 자살행위입니다. 기습을 당하면 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이미 정혼자가 있던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시의 율법대로라면은 ‘사형선고’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믿음’을 이야기할 때 아브라함은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순종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노인 한명이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국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순종으로 하나님은 여리고성이 고함 소리 한 번에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순종 하나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잘 알고 이해하는 순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많은 경우 내 경험과 지식에 의지하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이 순종을 하면 당장 망할 것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보고 재어봐도 이 순종을 하면 제가 망합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실패자”가 됩니다. “낙오자”가 됩니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이 순종만큼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분명한 비전을 주시고 확신도 주셨는데 당면한 순종의 문제 앞에서는 세상의 법칙만 보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순종은 대부분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들만 있는 것같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하라고 하시는 것 같은 그 선택을 가지고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에게 나아가면 욕밖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아무도 격려해주지 않고 아무도 잘 했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도 제 편이 되어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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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복학하고 나서 동역자들에게 은근히 흘린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교제 때나 소기도회 같은 모임 때. 동역자들이 주의 깊게 들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는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이 말을 했습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이라 여기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학기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역을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ESF 생활을 정리하겠다는 의미도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일부러 목자님들과 동역자들에게서도 조금씩 정을 떼고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고, 관계를 정리하는 듯한 말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아시다시피 2학기부터 1년간 교환학생을 갑니다. 사실은 90%, 저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ESF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입니다. ESF를 만나지 못했다면 숙제 점수 1점에 일희일비하고, 여전히 이기적으로 저만 생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 수백번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저였습니다. ESF는 저에게 그보다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저 자신이 그까짓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제 삶에 놀라운 목적과 방향이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제가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꼭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CCC나 IVF같은 선교단체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몸 담고 있는 ESF가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으며 그 대신에 할 일은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2학년 때는 캠퍼스에 양도 동역자도 없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나를 데리고 오신" 목자님을 원망하고 마음에 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ESF생활 내내 관계 속에서 생긴 상처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어떨 때는 가슴을 창으로 찌르는 듯한 괴로움으로 찾아왔고, 어떨 때는 손톱 밑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ESF에 있을 때 이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신발에 압정이 박혔는데 사람들이 내몰아서 억지로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피를 질질 뿌리며 걸어가는 모습.
사실은 예전에도 ESF를 나가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습니다. 2005년 2월이었습니다. 크게 떠들고 다녔었지요. 그 때는 누군가 저를 잡아주길 바랬었나 봅니다. 결국 목자님들이 저를 잡아주었고 지금의 소중한 양들을 그리고 동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문득 “아......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방법이 좀 달리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학기를 떠들석하게 헌신한 후 교환학생을 가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져버리려고 했던 것같습니다. 이제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매일의 QT의 본문은 계속 달라졌지만 저에게는 “순종하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읽는 성경마다 믿음의 조상들이 순종을 하는 순종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지금도 고개를 들어 책장을 보았는데 “순종선언”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심지어 한 동역자는 난데없이 저에게 “그리스도인의 권리 포기”라는 책까지 선물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제가 소감을 맡은 예배 말씀은 이처럼 순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주님께서는 제가 이곳에 있기를 기뻐하시는 것같습니다. 이 작은 선교단체를 내가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맞는 곳으로 택해주신 것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이 훈련들과 고난들은 다른 선교단체에서는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관계 등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제 작은 신음을 놓치시지 않으시고 내가 볼 수 없는 상처를 만지시는 주님께서 고통 속에 있는 제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아십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함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아신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겠습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인도하시든지 간에 이 공동체에 하나님이 품으신 뜻을 기억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무익한 종이 되기 원합니다. 제 작은 순종을 쓰셔서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꼭 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시기를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여러가지 단어들이 있습니다. “예수쟁이, 개독교인 등등”,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부릅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예측할 수 없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ESF 사랑하는 동역자님들, 양님들, 그리고 저. 모두 이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신나게 세상에 나가서 ‘순종’을 무기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