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침묵, 공문혜 옮김, 2006, 홍성사

처음에는 내가 '닥치기' 위해서 집어든 책이었지만
사실은 나의 침묵이 아닌 하나님의 침묵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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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제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듣고 흘려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겁쟁이의 이 한탄이
어째서 예리한 바늘이 되어 제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인지요?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박해가 시작되고 오늘까지 20년,
여기 어두운 일본의 땅에 많은 신도들의 신음이 가득 차고
사제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붕괴되어 가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의생을 보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p85)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성인전에 쓰인 그런 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p93)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바다의 단조로움이나
그 무서운 무감동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물론 만일의 이야기지만.....'

그때 가슴 한구석 깊은 데서 다른 소리가 속삭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무기둥에 묶여 파도에 씻긴
모키치나 이치소우의 인생은 얼마나 익살스러운 연극인가
많은 바다를 건너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 나라에 다다른 선교사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환영을 계속 뒤쫓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p106)


이런 박해받는 시대에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신도가 배교한다거나 목숨을 던진다거나 할 필요도 없이
은혜받은 그대로 신앙을 계속 지킬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평범한 신도였기 때문에
육체의 공포를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p122)


"당신 때문에 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될지." (p135)


주 그리스도는 누더기처럼 더러운 인간만을 찾아 구하셨다.
마루에 누우면서 신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다녔던 것은
사람들에게 돌을 맞은 창녀나
가버나움의 혈루병 여인처럼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들이었다.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p181)


왜 당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저 애꾸눈 농민이
오호지 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정적이, 이런 고요가 계속되는가?
이 한 낮의 고요함, 매미 소리,
이런 어리석고 참혹한 일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그분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p186)


당신은 왜 침묵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런 때마저 침묵하고 계시는 겁니까? (p209)


그렇다. 인간들을 위해 유익하게 소용된다는 것은
성직자들의 단 한 가지 염원이며 꿈이다.
신부들의 고독이란 자신이 타인을 위해 무익할 때다. (p224)


"구멍 매달기라고 하오. 언젠가 이야기한 적도 있겠지만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거적으로 둘러싸고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리게 하는거요...

그 상태로는 즉석에서 절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귀 뒤에 구멍을 뚫는 거요.
한 방울씩 피가 떨어지도록 하는거지..." (p227)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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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한 마디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랜 시간을 매달리고 기도해보지만
하나님은 그 한 마디 말씀을 주지 않으신다.

끝이 없는 터널을 걷는 느낌...

밤에 기도할때
엎드려서 초췌해져서 쓰러져서 기도할때에
그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암흑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음성도
하나님의 따스함도
하나님의 임재도

아무것도

하나님은 정말 계신것일까?

내 마음 속에 울리는 소리들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도를 하면서
설정된 하나님의 이미지에
따른 음성은 아닐까?

하나님의 진짜 음성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의 하나님이 아닐까?

적막,
고요.
괴로움.

모두가 분명한 현실이다.

- 2004년 6월에 썼던 일기.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금기이자 불문율이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해 수많은 설명과 변명들을 만들어내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무거운 침묵을 경험한 자들을
위로할 순 없을 것이다.

나도 그 침묵을 경험해봤다라고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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