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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꼭두각시 서커스 (★★★★★) 2 2009.08.06
  2. 피에타와 나 2009.07.12

사실 이번주 내내 이 만화책에 빠져서 허우적대면서 살았다.
누구는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같다고
"죄"에 가깝게 생각하지만
나에게 만화책은 문체가 좀 더 편한 문학작품일 뿐이다.

위의 사진은 이 만화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시로가네의 미소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여자의 미소 때문에
이 43권에 달하는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다.
40권이 넘어가서야 이 여자는 처음으로 저렇게 웃는다.

동화책에서나 볼 만한 "공주(혹은 전유성)를 웃겨라"의 이야기같지만,
모든 한 장면, 한 장면은 만화에 나오는 자동인형들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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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을 좋아하는 한 중국인 형제(형은 진, 동생은 인)가 있었다.
그들은 더 나은 인형극을 보이기 위해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했고
결국 체코의 프라하에 와서 유명한 연금술사의 제자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두 사람 모두 프란시느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프란시느는 진을 더 사랑했고, 결국 둘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인은 그것을 견딜 수 없었고 프란시느를 납치하여 도망간다.
수년이 지난 후 진이 인을 발견했을 때에
프란시느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구금되어 있었고,
프란시느는 결국 스스로 불을 질러 자살한다.

프란시느를 잊지 못한 하지만
프란시느의 사랑을 결국 얻어내지 못한 인은
프란시느의 인형, 살아있는 자동인형을 만들어내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전혀 웃지 못한다.

그리하여 인은 다른 자동인형들을 만들어
프란시느를 구금했던
마을의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복수를 하기도 하고

"남을 웃기지 못하면 죽는 병"인 조나하병을 만들어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프란시느를 웃게 만들려고도 하지만

여전히 프란시느 인형은 웃지 않았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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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길이의 만화책인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우주 최강이라던 프리더를 죽인 후에도
질질끌면서 셀과 마인부우가 등장했던 것과는 다른.

마치 첫 권의 첫 스케치를 하기 전부터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머리 속에서 구성되어 있었던 것같은 완벽함.

나같이 한가한 사람은
꼭 시간을 내서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만화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두근거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익숙한 모습.
내 아이디.

피에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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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와 나

from 성화이야기 2009. 7. 12. 03:16
아래 포스팅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피에타는 사실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제작해
현재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바로 이 작품의 이름이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 작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혹은 비탄을 뜻하는 말인데,
대개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의미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상은
하나님이 정말 미켈란젤로한테 직접 영감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출애굽 할 때 성막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떠올랐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35장 30 ~ 35절 일부)

마치 천사가 조각한 것과 같은 모습.
하지만 조각인데도 너무나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마치 회화처럼 한 면밖에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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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차차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할 때,
한 추기경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제작하던 중 난감하게도 그 추기경이 죽어버렸고,
미켈란젤로는 이왕 제작하던 거 완성을 시켜서
피에타를 산 피에트로 성당 공터에 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 이 작품은 너무나 놀랍고 완벽한지라
결국 이 피에타는 산 피에트로 성당 안으로 옮겨진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버려버리는 바람에
누가 이 작품을 제작했는지 사람들이 고민하다가
결국 미켈란젤로가 아닌 엄한 사람을 찬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밤에 정과 망치를 가지고 성당 안으로 숨어들어서
마리아의 어깨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가는데
미켈란젤로는 문득 회한을 느꼈다.

아. 이 놀라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도 본인의 이름을 새기지 않으셨는데
나는 한낱 조각가로 내 이름을 위해서
밤에 숨어들어가 하찮은 내 조각에 이름을 새겼구나.

그래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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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에타는 수난도 많이 겪었다.

1980년대에 한 사람이 망치를 들고 달려들어서
이 마리아의 코와 팔을 박살을 낸 적이 았다.

그래서 지금은 산 피에트로 성당 방탄유리 안,
그것도 유리로부터 대략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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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필명을 바꿔왔었다.


처음에는 Sola Fides, 라틴어로 '오직 믿음'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Epic Architect, 그러니까 '서사 설계자'.
그리고 남들 모르게 '양치기 소년'이라는 필명을 썼었다가
로마 성 피에트로 성당에서 피에타와 마주친 후 
이제는 피에타를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물론 나의 피에타는 감히 원래 의미의 피에타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다른 각도로 보았을 때
마리아도 그리고 죽은 예수님도 사실은 살짝 미소짓고 있듯이




나의 삶과 글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슬픔, 비탄, 그리고 스산한 회한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에 훗날 미소지을 만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24세의 나이에 저런 걸작을 제작했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기고 싶었다. 2009년의 강신행도 24살이기 때문일 것이다.



덧,

피에타는 미켈란젤로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작했다.
아래의 작품은 프란츠 폰 슈튜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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