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탈린 이후로 한번쯤은 가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바로 그곳,
핀란드의 헬싱키에 드디어 직접 다녀오게 되었다.
1. 계획
역시나 이번 여행의 계획도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했다.
애초에 가려고 하던 스웨덴 서부 예떼보리 여행이 상당히 비싼 예산으로 인하여서 주저되고,
이미 들떠있던 여행심을 채워주기 위해 거의 즉흥적으로 인원을 모으고,
또 거의 즉흥적으로 보트를 예약했다.
미리 여행책을 보거나 하면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고, 지도를 챙겨가지도 않았다.
같이 갈 사람들에게 의지한 것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관광지를 찾아가는 류의 여행이 아닌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몇 주요 관광지를 찍고 오는 여행은 마치 수학책 뒷편의 연습문제를 푸는 것처럼 성
취감은 있을지언정 나를 쉽게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용한 크루즈 여행사는 바이킹 라인 http://www.vikingline.se/ 이었다.
대개의 경우 이곳에서 예약을 하기 위해서는 스웨덴어의 압박으로 꽤 시간이 걸리는 듯 하지만,
나야 뭐 웁살라 현재 교환학생 중 유일한 기본 스웨덴어 레벨 2 수강자라는 메리트를 이용,
간단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우하하하.
물론 스웨덴어를 못한다고 해서 전혀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이
구글 translator로 거의 완벽한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영어 번역이야 여전히 막장이지만,
영어-스웨덴어는 거의 완벽한 번역이 가능하다.
이런 기술들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편이 만날 인터넷으로 연예뉴스나 찾아보는 것보다 현명하다.
어쨌든 우리가 여행했던 4/24(금) ~ 4/26(일) 일정으로 가장 값싼 4인실 캐빈을 예약하는데
720 크로나가 들었고 개인별로 180크로나를 지불하게 되었다.
대략 3만원 돈인데,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초호화 여객선을
이런 가격으로 탈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이전에도 한번 말했던 것같지만 정말 타이타닉이 부럽지 않다.
2. 크루즈
하지만 배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충격과 공포는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유학생으로서의 가난함 때문에 가장 싼 캐빈을 예약한 우리는 배의 2층에서 자게 되었다.
객실 중에서는 제일 지하였고, 3층은 무려 주차장이었다.
방에 창문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날따라 왠지 좁아보였던 것같다.
하지만 의외로 너무나 편안했고 아늑했다.
내가 다녀본 여행 중에서 가장 날씨도 좋았었고 그러니 밖에서 다음과 같은 풍경을 감상하면서,
호화 크루즈 여행을 즐기려고 하였으나,
어느 나라를 가도 결국 숙소로 회귀하는 버릇만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같다.
결국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정말 허리가 휘어지도록 잤다.
3. 관광지
이제부터 어려운 부분이다. 귀찮기 때문인데, 이 부분을 쓰지 않으면 이 여행기는 나의 자기 만족 이상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고, 커피를 무한대로 들이키면서 힘을 낸다. (사실 딱히 할 것이 많지 만은 않다)
1) 야외 시장 Kauppatori.
배에서 내린 후 한 5분 정도 걸으니 나타났다.
유명한 카모메 식당에서도 주인공이 생선인가를 사던 곳으로 기억한다.
수제 인형이랑 목도리, 모자 등이 많았었다.
하지만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크진 않았다.
토요일마다 웁살라에서 서는 오픈마켓이랑 비교해서도 그리 크지 않았던 것같다.
하지만 항구 바로 옆에 위치해서 풍경 만큼은 정말 너무나 좋았다.
시간이 있었으면 그냥 항구 쪽을 향하여
갈매기 밥이나 주면서 걸터앉아서 쉬었어도 좋았을 것같다.
2) 헬싱키 대성당 Tuomiokirkko (Lutheran cathedral)
이 여행 중에 꼭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흰색 교회였다.
너무나 가고 싶어서 검색 엔진 등에서 검색을 해서 사진만 가지고 있기도 했을 정도인데,
실제로 보니 감격적이었다.
세상에나!! 건물이 저렇게나 하얗다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푸른 하늘과 어울러져서 마치 교회를 구름으로 만든 것같았다.
교회 앞에 있는 계단과 광장은 여느 유럽의 다른 광장들처럼
헬싱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약속장소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신도림역에서 12시에 만나!" 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12시에 흰 교회 앞 광장에서 만나" 하는 거지.
교회 앞으로 보이는 광장 역시 Senaatintori 즉 원로원 광장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러시아의 샹트 페테르부르크의 광장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행복해져 버렸다.
3) 반석 교회 Temppeliaukio Church.
교회 자체를 돌로 지어져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보시다시피 창이 나 있어서 교회 전체가 저 빛만으로도 충분히 채광이 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았다.
체코에 해골로만 되어 있는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마 이런 느낌일까.
4) 시벨리우스 공원
시벨리우스 공원은 헬싱키 중앙에서 북쪽으로 많이 떨어져 있어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마도 여기를 다녀와서 그날밤에 다같이 탈진했는지도 모르겠다.
시벨리우스는 유명한 핀란드의 작곡가인데,
이 공원에는 시벨리우스의 저 금속 얼굴상과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저 금속 파이프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그 뿐....ㅠㅠ......
공원 자체보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호수들과 바다들이 참 이뻤던 것같다.
공원에 왔는데 좀 앉아 쉬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 슬슬 크루즈가 떠날 시간이 다가와서
얼른 일어나서 다시 그 먼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ㅠㅠ
5) 우스펜스키 교회. Orthodox Uspensky Cathedral.
안타깝게도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웁살라 대성당이랑 색은 대략 비슷한데, 정교함에서 우스펜스키 교회가 압승!
그나저나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웁살라 대성당이랑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4. 다녀와서
여행 중에 내 가슴 가운데 무엇인가가 들어온 듯하다.
여행 중에 있었던 대화들에는 말장난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었었고,
배 위에서의, 그리고 기차 안에서의 풍경들도 너무 빠르게 지나갔으며,
짧은 시간 들렸던 관광지에서도 겨우 5분 정도 앉아 사진을 몇번 찍은 후에는
바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잔인하게 말해서 여행 그 자체에서는 내가 의미를 찾을 만한 것이 많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
런데 뭐랄까 내 가슴에 새로운 것이 생겨났다.
아마도 이게 여행의 의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걷던 길에서부터 조금 벗어나서 헤매는 일만으로도
내 머리 속에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올랐고, 잊었던 노래들이 기억났으며,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롭게 하게 되었다.
그랬기에 자전거를 잃어버렸어도,
카메라 커버를 잃어버렸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들을 대가로 생각하고 넘어가도 그다지 아쉽지 않을 정도로 귀한 것들을 얻었기에 말이다.
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너무나 피곤하고
해야할 과제들이 머리에 도무지 들어오지 않으니 일찍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