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고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황금 물고기 리뷰 2009.03.14

황금 물고기 (1997)

르 클레지오 장편소설
최수철 옮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르 클레지오
그의 손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눈부신 성장기"

아프리카 소녀 라일라.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녀는 흑인 소녀이다.
어렸을 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주 어렸을 때 인신매매를 당했고,
그리하여 랄라 아스마라는 에스파니아계 유대인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죽자, 그의 딸을 피해 도망가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갈등과 도망의 시간들이다.

어딘가에서 잠깐 정착하지만
곧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라일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어디론가로 떠난다.

이 짓을 프랑스, 미국에 이르기 까지 하다가 
결국 고향, 혹은 고향으로 추정되는 곳 "목적지"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책을 쉽게 놓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내가 노벨상 수상자 작품에서 원했던 것은 '책을 쉽게 놓지 않게 하는' 매력이 아니다.
그런 것을 원했다면 대중작가들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게 훨씬 나았겠지.

가해자와 사건이 벌어지는 도시나 국가만 변할 뿐,
모든 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라일라의 반응은 단 하나. "도피"뿐이다.

끝자락에서는 고향에 다달음으로 이제 행복이 시작될 것처럼 묘사해놓았지만
고향에서도 결국 갈등을 겪으면 도망치게 될 것이다.
유토피아, 그리고 그녀의 가나안 땅인 그곳에서 도망친다면
그녀는 더이상 발붙일 곳도 없고, 희망도 없게 되겠지.

상처에 딱지가 앉기 전에 상처를 또 내고,
부러진 다리로 계속해서 똑바로 걷고,
죽어가는 중에서라도 내 피를 마시고 다시 일어나야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수없이 확인했듯이,
갈등에서 도망치는 것은

내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 화염을 피해서, 다른 방으로 가버리는 것과 같다.
얼른 물을 끼얹거나, 119를 부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도망가버리면,
결국 집과 함께 불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줌 재가 되어버릴 뿐이다.

결국 불꽃은 내가 어디로 도망가더라도 끝까지 쫓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행의 경우에, 행운보다 더 집요하게 쫓아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

물론 음악과 고향이라는 소재를 활용해서,
그녀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이 있긴 하지만,

음악의 생산보다는, 대중음악의 소비에 친숙한
인구 천만의 도시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는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

이제 내가 고쳐쓰고 싶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눈부신 도망기".
내 생각에 이 소설에서 '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덧1.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에 대한 비평은 언제나 환영한다.
덧2. 처음에는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와의 비교를 바탕으로 비평을 쓰려고 했으나, 
그런 수고를 할만한 가치가 없음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