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크로나(대략 8만원)라는 돈이 내게 사실 작은 돈이 아니라서
(거의 ESF 수양회비가 아닌가....)
이래저래 우유부단을 부리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한국에서 막상 하려고 하면 훨씬 더 돈이 많이 든다는
희경님의 말씀에 따라
500 크로나를 과감하게 내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스톡홀름 투어에 다녀왔다.
사실 이곳저곳 여러 곳을 다녔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사 호 박물관이었다.
사진으로는 충분히 그 감상을 옮길 수 없지만
사진과 함께 작은 설명을 달아 그 때 받았던 느낌을 조금이나마 남기고자 한다.
바사호는 1626년부터 스웨덴 왕가에서 독일해군을 누르고 발트해의 재해권을 획득하기 위해
야심차게 건조한 당시의 1급함이었으나(현대의 이지스함 개념인 듯하다),
1628년 8월 10일 처녀 항해 때 스톡홀름 항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전복. 그대로 수장되었다.
마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타이타닉호의 스웨덴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다시 인양하기 위해 노력했고 1961년 결국 이 배를 바다 위로 끌어올린다.
지금은 바사호 박물관이라는 곳에 선체가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다.




잘 보면 알겠지만 배의 점점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록 선원들의 상태가 안 좋아진다.
병자가 되거나 약해져서 쓸모없게 되면 점점 아래층으로 내리는 것이다.
모형에서 잘 나타나듯이 아래층에서는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셈이다.
배가 가라앉았을 때 죽었던 사람들도 대부분 아래층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몇 명은 구출되고 몇 명은 그대로 수장되었다.
이 곳에서 죽은 몇 사람들은 그대로 해골이 남아서,
과학자들이 그 해골을 토대로 당시의 수장된 사람들의 얼굴을 복원해 놓았다.
하지만 죽어서 그게 무슨 소용일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 배를 바라보면서 나는 두 위대한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1
제갈공명이 눈에 가시 같던 사마의를 결국 퇴로가 차단된 호로곡에 가두었다.
공명이 미리 설치해 놓은 수많은 지뢰들과 타기 좋은 마른 풀들.
이제 사마의의 명은 다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고, 불이 꺼져 사마의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공명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을 꾀하는 건 사람이로되 이루는것은 하늘이로다 억지로는 어찌할 수 없구나
2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왕 솔로몬. 그는 잠언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계산을 해도 소용없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짐을 느낀다.
이제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