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1 - 무제

from 끄적거리기 2009. 6. 5. 02:20

무제

강신행


창가에서 비가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만 시간을 잔 듯한 피로감이 밀려와 맞을 때 몸을 움추리듯이 흠짓 눈을 다시 감아버린다. 

비가 오기에 옷을 무엇을 꺼내 입을지도 갑자기 고민이 되어버렸다. 원래 옷 입는 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비 오는 날만은 약간 달랐다. 축축한 느낌을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장을 꺼내 정성스레 입고 넥타이를 맨다. 여전히 넥타이는 잘 매지지 않았다. 언제나 너무 짧거나 너무 길었다. 째깍째깍하는 소리는 점점 그의 귀에 크게 들려왔고 그는 일단 넥타이를 양복 주머니에 넣고 침대조차 정리하지 못한채 방을 나선다.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목소리.

Flash Back. 죽을 때에나 체험한다는 바로 그 현상이 그에게도 일어났다. 그 목소리가 방아쇠가 되어서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의 소용돌이가 그의 가슴을 휘젓고 돌아갔다. 그는 문득 다리에 힘을 잃고 우산을 놓쳐버린다. 우산은 뒤집힌 채로 비를 모으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두 사람을 향한채 떨어지지 않는다.

너.

문득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는다. 도저히 그 눈을 뗄 수가 없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누군가 와서 내 뺨을 때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0.1초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곧이어 다시 머리는 하얘진다.

너 그리고 한 아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와 한 아이는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제서야 그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스스륵 미끄러져 간다. 우산은 놓친 그 자리에 그대로 주인을 기다리기로 한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데 그의 몸은 그녀의 속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녀는 아이와 발맞춤을 하느라 천천히 걷고 가끔은 주위를 둘러보며 무엇인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너무나 느리게 걷고 있는 그들인데 그는 큰 못들이 각각 그의 발에 박힌 것같다고 느낀다. 찡한 통증을 느낀 순간 그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다. 

아. 안 돼.

그녀와 아이는 한 승용차 안으로 들어갔고 바로 문이 닫혔다. 그는 일어나서 다시 몸을 끌어보지만 또다시 넘어진다. 일어나고 넘어지기를 서너번 하는 사이, 어느새 그 차는 떠나버렸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주머니에서 늘어진 넥타이가 배수구와 그의 발에 엉켜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넥타이는 어느새 갈기갈기 찢겨져버렸고 그것을 겨우겨우 풀고 돌아갔을 때 이미 우산은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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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종이 위에 끄적거려본 초단편.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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