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from 끄적거리기 2009. 7. 9. 03:38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걸까… 머리가 너무나 아프다. 아스피린을 씹으면서 물을 찾았다. 무슨 놈의 집에 물이 한 컵 없어… 처음부터 씹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침을 삼킨다. 아스피린의 다 부서지지 않은 조각들이 목을 긁으면서 넘어간다. 느낌이 싸하다. 
 여름날이지만 왠지 쌀쌀한 느낌이 들어 옷을 한 장 더 걸쳤다. 어제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여름날 아침인데도 여전히 하늘이 검푸르다. 저쪽에 보이는 버스정류장마저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문득 다 넘어가지 않은 쓴 아스피린이 혀에 걸린 듯해 움찔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버스정류장을 지나쳐서 학교까지 걷기로 했다. 정리되지 않는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흐뜨러뜨리면서 두통을 더더욱 심하게 한다. 어느새 오늘 듣는 수업들의 숫자와 중요도를 머리는 분석하기 시작했고, 학교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결국 들기 시작한 무렵에

어, 너 왠일이야?
왠일이긴, 학교가는 길이지.
말이 또 짧다 너.

그녀다. 덜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나의 뒷통수를 그녀의 손이 살짝 어루만졌다. 

뭐야?
오빠야 말로 뭐해. 가자.
아주 이제 반말만 하는구나

그녀가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걷는 그녀 뒤를 일단은 무심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아, 그런데 방향이…
응?
아… 학교를 하도 안 가다 보니… 
아, 이쪽이야.

 이제는 내가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덕분에 머리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다시 복잡해졌다. 사실 애초부터 그녀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그녀가 실물로 나타나니까 내 사고과정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걸으니 문득 그녀가 보이지 않아서 서운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옆에서 같이 걷기에는 너무 쑥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난관이 나타났다.

 흙탕물.

 내가 평소에 자주 걷던 길이 어젯밤에 내렸던 비로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 길은 거의 나만 아는 길이었다. 담 사이의 길. 폭은 겨우 두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지만 꽤 긴 길. 좁은 길이 좋아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땅인지 강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질척한 길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에이, 이게 뭐야. 돌아가자.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나는 어느 새 그녀를 번쩍 안아올리고 있었다. 한 손은 그녀의 탄탄한 팔을 잡았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다리를 받쳤다. 나 때문에 그녀가 험한 길로 왔다는 미안함에 그녀의 질량 같은 것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내 신발, 그리고 어느새 내 무릎 위까지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갔다. 혹여 내가 발을 헛딛어 그녀의 등에 흙탕물이 튀길까 하는 생각, 내가 숨을 쉴 때 아침에 먹은 아스피린 조각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미안하는 생각, 그리고 정말 사랑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

그 날밤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녀 역시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서 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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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기반으로 한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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