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일화

from 나에 관하여 2013. 2. 9. 19:29

1.  나는 전교 1등을 하면, 휴대폰을 사준다는 deal을 고 1때 아버지와 한 적이 있다. 전학을 와서 좋은 학군 아이들에게 영혼까지 털리고 있던 나는, 무슨 조화였는지 다행히 전교 1등을 하였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노는 게 스마트폰이다만, 당시 내가 deal의 결과로 받을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에도 존재하던 '버스폰' 흑백 애니콜 플립형이었다. 즉 한 마디로 무료폰이었다. 내가 전교 1등까지 해서 그 폰을 쓰고 있을 때, 친구들은 색상도 찬란한 컬러폰인 스카이 등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2. 수능이 끝나자, 선생님들의 관심들이 쏟아졌다. 평소에 나에게 잘해주던 학생주임 선생님은, 부족한 내 내신을 고려했을 때 안전빵으로 붙을 수 있는 서울 내의 C의대를 추천해주었다. 

생판 처음보는 어떤 익명의 선생님은, 대학교 가면 과외 같은 거 하지 말고, 학업에만 열중하라는 팔자 좋은 이야기를 하였다. 게다가 거기에 추가로, 내 뒷통수를 후리면서, 별 사이비같은 한의대같은 곳에 가지 말고, 공대에 가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하였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아저씨였다.


3. 담임 선생님이랑도 면담을 했었다. 나군의 S대를 쓰는 것은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과를 쓸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의대 커트라인은 신의 영역이었고, 수의과대 이런 곳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교수님께서 즉석에서 전기컴퓨터공학부를 쓰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선생님 아들이 의대와 공대 중에 하나를 고민한다면, 어디로 보내시겠어요?"라는 질문에, 그 선생님은 의대를 선택했다. 즉석으로 정해진 그 과에서 나는 현재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4. 다군은 선택지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A대 의대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때 아버지가 만류하였다. 고모, 즉 아버지의 동생 중에 한명이 A대 병원에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A대 대신, H대 공대에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합격하였다. H대 공대는 너무 하향지원이라서, 학교 차원에서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가군의 C의대와, 나군의 S공대를 버리고, 장학금을 주는, H대 공대에 가라고 넌지시 말했었다.


5. C대 의대를 합격하고,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같다. 의대에서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왜 등록을 안 하냐고. 그 전화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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