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전교 1등을 하면, 휴대폰을 사준다는 deal을 고 1때 아버지와 한 적이 있다. 전학을 와서 좋은 학군 아이들에게 영혼까지 털리고 있던 나는, 무슨 조화였는지 다행히 전교 1등을 하였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노는 게 스마트폰이다만, 당시 내가 deal의 결과로 받을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에도 존재하던 '버스폰' 흑백 애니콜 플립형이었다. 즉 한 마디로 무료폰이었다. 내가 전교 1등까지 해서 그 폰을 쓰고 있을 때, 친구들은 색상도 찬란한 컬러폰인 스카이 등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2. 수능이 끝나자, 선생님들의 관심들이 쏟아졌다. 평소에 나에게 잘해주던 학생주임 선생님은, 부족한 내 내신을 고려했을 때 안전빵으로 붙을 수 있는 서울 내의 C의대를 추천해주었다.
생판 처음보는 어떤 익명의 선생님은, 대학교 가면 과외 같은 거 하지 말고, 학업에만 열중하라는 팔자 좋은 이야기를 하였다. 게다가 거기에 추가로, 내 뒷통수를 후리면서, 별 사이비같은 한의대같은 곳에 가지 말고, 공대에 가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하였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아저씨였다.
3. 담임 선생님이랑도 면담을 했었다. 나군의 S대를 쓰는 것은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과를 쓸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의대 커트라인은 신의 영역이었고, 수의과대 이런 곳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교수님께서 즉석에서 전기컴퓨터공학부를 쓰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선생님 아들이 의대와 공대 중에 하나를 고민한다면, 어디로 보내시겠어요?"라는 질문에, 그 선생님은 의대를 선택했다. 즉석으로 정해진 그 과에서 나는 현재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4. 다군은 선택지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A대 의대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때 아버지가 만류하였다. 고모, 즉 아버지의 동생 중에 한명이 A대 병원에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A대 대신, H대 공대에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합격하였다. H대 공대는 너무 하향지원이라서, 학교 차원에서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가군의 C의대와, 나군의 S공대를 버리고, 장학금을 주는, H대 공대에 가라고 넌지시 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