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발
그 전날 밤. 지난번 예떼보리 여행 기차(새벽 6시 50분 차)를 놓쳤던 것을 기억하며
아침 8시 50분 비행기를 놓칠 수 없다는 일념 하에 커피를 마시면서 밤을 샜었다.
그리고는 새벽이 되어서 완전히 힘이 빠져서,
새벽 4시 50분에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웁살라 중앙역을 향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비행기에 100ml 이상 액체 반입이 안되는 것을 깜빡하고
스킨, 로션, 치약, 샴푸 등등을 가지고 갔다가 공항 검색대에서 걸렸다.
그래서 일단 통과에 실패하고 겨우겨우 사물함을 찾아서
아깝게 그 모든 세면도구들을 다 집어넣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서는 부족한 잠을 채우려 했는데 계속해서 귀가 아팠다.
고도가 바뀔 때마다 귀가 너무 아파서
어디선가 들은대로 계속해서 침을 삼키기도 하고
입을 벌렸다 닫았다하며 코펜하겐으로 가는 내내 뒤척였다.
여행 출발 하면서의 기억이 단편적으로밖에 나지 않는건
너무나 피곤해서 잠은 못 잤지만 뇌는 계속 잠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 비 오는 코펜하겐
그나마 스톡홀름에서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맞을 만 했었는데
코펜하겐에서는 정말로 제대로 비가 오고 있었다. 바람도 세게 불어서 상당히 쌀쌀했다.
사진을 한번 찍으려 할 때마다, 정말로 힘들었다.
지도와 여행책자 등등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들을 팔목에 걸거나 팔 사이에 끼고,
겨우겨우 카메라 가방에 있는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고 그새 비에 맞아 젖은 렌즈를 닦아주어야만 했다.
이 때까지는 우산도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비를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다.
먼저는 숙소를 찾아갔다. 코펜하겐 중심가인 Norreport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가 묶을 유스호스텔인 Sleep-In Green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가장 싸기" 때문이었다.
무려 38명의 남녀가 한 룸에서 샤워실 2개, 화장실 1개를 공유했다.
처음에는 숙소에 얼마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딴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늦가을 북유럽의 밤은 너무도 길었다.
코펜하겐에 있었던 시간의 2/3 정도를 이 곳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면서 보내게 되었다.
카운터에서 체크인 시간이랑 체크아웃 시간 등등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
12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는 소리에 비 속으로 다시 나갔다.
코펜하겐의 느낌은 왠지 스톡홀름이랑 비슷했다.
하지만 비가 와서 였을까, 왠지 더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톡홀름은 관광객으로 넘쳐 흐르고, 스톡홀름인들이 주장하듯이 "스칸디나비아의 수도"의 느낌을 주었지만,
코펜하겐은 실제로 스칸디나비아에서 "제일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사람도 거의 없었고,
스톡홀름에서는 그 흔한 기념품 가게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길들이 딱딱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여행서의 지도까지 왠지 부실해서
첫날에는 길을 찾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어딘가에 도착해도 현재 위치를 알지 못하니 이 건물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래서 결국 그냥 보이는 길대로 끌리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바리바리 짐들을 끌어안고
그러다가 시립도서관을 발견했다.
비는 걷잡을 수 없이 많이 오기 시작해서 우산없이는 견딜 수 없었고
도대체 어디서 우산을 살 수 있을지도 막막했기 때문에 마치 대피하듯이 들어갔다.
여행책을 펴서 현재 위치를 파악하려고 해 보았지만 책에는 거리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 실패했고,
갑자기 몸이 따스해지니까 어젯밤 한숨도 못잤던 피곤이 어느새 몰려와서
책상에 엎드려서 잠들었다.
대략 2시간 정도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3. 우연히 발견한 곳.
잠에서 깨어서는 왠지 부끄러워 져서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나왔다.
다시 비 속을 헤쳐서 반가운 H&M을 찾아서 우산과 목도리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하릴없이 걸었다.
그러면서 많은 곳을 우연히 발견했다.
웁살라의 상징이 웁살라 대성당과 웁살라 성이듯이
코펜하겐의 상징 그리고 혼은 이 곳 뉘하운에 있다.
새로운 항구라는 뜻의 뉘하운은 안데르센이 살던 곳이라서 더더욱 유명한 곳이었다.
덴마크 왕립 극장. 처음에는 그 웅장함에 시청이나 박물관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높이 36m의 천문 관측소.
이를 만든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가 "내가 만든 최고의 예술작품"이라며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아쉽게도 비로 인한 급격한 체력, 체온 저하로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방에는 5시 경에 돌아왔다. 이미 해도 져버렸고, 비도 그칠 줄을 몰라 더 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다들 나가서 아무도 없는 숙소에서 씻고 바로 잠들어버렸다.
20 덴마크 크로나 (대략 4500원)를 아끼려고 배게를 대여하지 않았는데
배게가 없으니 너무나 잠자리가 불편해서 한 열 번이상은 잠에서 깨었던 것같다.
다음 날 9시에 일어났으니 무려 16시간을 숙소에 쳐박혀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아침에 보니 눈이 초롱초롱해서 마음에 들었다.
4. 해.
둘째날에는 무려 해가 떴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해라 너무나 기뻤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밝아지고 유쾌해 졌지만 (그나마)
어렸을 때의 나는 왠지 우울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그래서 소풍 전날에도 차라리 비가 와서 소풍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었다.
이 날의 해는
어제의 젖은 옷을 입고 숙소를 나섰던 나의
얼어붙은 마음을 그리고,
코펜하겐에 대한 안좋은 인상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초코렛 한 조각과 바나나 두 개를 사서 들고, 강가로 가 벤치에 앉아서 조촐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강가에는 백조들과 오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나도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가 떠올랐다.
안데르센이 이 강가에서 섞여있는 백조들과 오리들을 보며 아마도 그 동화를 썼었던 거 같아
마음이 왠지 흐뭇해졌다.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