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세리,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제목 그대로 2008년 봄학기에 인문학 글쓰기 수업 과제로 제출하였던 글들이다.
1년 반이 지난 오늘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정말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예전에는 참 창의적이었다는 생각 조금, 그리고 참 부끄럽게 글을 썼다는 생각...
그리고 그 때는 정말 하나님밖에 머리 속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

첫번째로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쓴 감상문이고,



두번째는 '이름'을 소재로 하여 쓴 단편 소설이다.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둘다 쉽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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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은 모두 알몸이고 순수하며
인간이 몸에 걸치는 의복과도 비슷한
미사여구들을 죄다 벗어던졌을 때 생겨나는
매력으로 충만해 있다.

카이사르의 문장은 입에서 나오든
글로 쓰이든 관계없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내고 잇다.
품격이 높고, 광채를 발하며, 화려하고 웅장하고 고귀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이성적이다.
                                                 - 키케로 (기원전 51년)

문학이란 너희들이 원래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문학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글.
독자의 생각 따위는 완전히 묵살하고
자족감에 잠겨 있는 듯한
강하고 아름다운 형태
                                            - 고바야시 히데오 (1942년)

투철한 문체를 사랑한 사람
(푸리 세르모니스 아마토르 Puri Sermonis Amator)

카이사르의 문체는 다음 세 가지로 총괄할 수 있을 것이다.
간결함, 명석함, 세련된 우아함
                                             - 시오노 나나미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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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리 홍보를 하느라고 신입생 두 명과 밥을 먹고 헤어져서 허겁지겁 기초교육원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시간표를 꺼내서 ‘106호’를 확인한 후 문을 부수듯이 열며 강의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직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낯선 공기, 낯선 선생님, 낯선 얼굴, 낯선 성비(性比) 등등 무엇 하나 내게 익숙한 것이 없다. 지금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겠고, ‘ETL’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이다. ‘자기 소개서’를 이번주까지 작성하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한숨부터 나온다.

- 또..... 자기 소개서인가......

수강 취소를 할까 생각도 해보지만 수업을 추천해 준 친구의 말을 믿고, 그리고 이 수업의 느낌을 믿고 일단은 들어보기로 하고, 평생 한번도 만족스럽게 쓴 적이 없는 자기 소개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에 앉았다.


2. 친구의 조언을 기억하며 ‘인문학 글쓰기’에 수강신청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이미 꽉 차 있었다. 평소에 ‘초안지 플레이’라는 것은 그 수업의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여겨 왔기에 그냥 월요일, 수요일 오후 1시는 비워둘까하고 생각하다가 괜히 아까워져서 일단은 ‘몽골의 언어와 문화’를 꾹 눌러두었다. 혹시 인문학 글쓰기에 자리가 비면 꼭 끼어 들어가야지 생각하면서.


3.
- 이번에 TEPS로 대학영어 재껴서 안 들어도 될 것같아. 강의 추천 하나만 해줘. 학문의 기초로
- 너 글쓰기 수업 꼭 하나 들어라“
- 왜?”
- 일단 글쓰기 자체가 중요한 것도 있고 무조건 절대평가!!”
- 과목 이름이 뭐야?
-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 어쩌고 글쓰기인데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들어라. 인문학은 진짜 좋아. 네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 글쓰기 시키는데 그 때 아니면 또 언제 네가 글써보겠니?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서 1학년들이랑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
- 오호? 교수님 이름이 뭐였니?”
- 이상원 교수님. 짱이다. 포스 덜덜 ㅋㅋ 멋진 분이야”


4. 전화가 왔다.

- 형, 축하해요.
- 응? 뭐가?
- 형 오늘 전역하셨잖아요.
- 아 맞다!!!


5. 부대 출입증을 당직 부사관에서 넘기고 내 마지막 거수 경례를 했다.

- 단결!

별로 알고 지냈던 사이는 아니었는데, 마지막에는 왠지 안아도 보고 싶었다. 아니 내가 안기고 싶었던 것같다. 잘 살라는 당직 부사관의 덕담을 뒤로 한 채 숨기어 두었던 디카를 꺼내서 부대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한산하다. 다른 내 추억의 장소들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이곳 부대만큼은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출입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근무를 시작하며 내가 걸었던 땅들, 내가 드나들었던 건물들, 아침마다 수백번도 넘게 뛰어다녔던 구보 코스......
부대를 나설 준비를 끝내고 나왔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익숙해진 짧은 머리 위에 그리고 내 군생활 물품들이 다 담긴 캐리어 위에 곧 수북히 눈이 쌓여서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항상 눈은 성가신 것이었다. 여자친구한테 “눈 오면 신발이 젖기만 하고 짜증나”라고 했다가 애를 삐지게 한 적이 갑자기 기억이 났다. 눈이 오면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나 싶어 괜히 서글퍼진다.
그리고 정말로 부대문을 나섰다. 쾅 하고 부대문이 닫히고, 이제 나는 다시 저 1m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아니 사실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건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째서 뛸 듯이 기쁘지 않은걸까? 2년 내내 꿈꾸워 왔던 날인데.....


6. 일기를 쓰고 있다. 군대에 들어온 이후부터 전자기기와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일기와 여러 가지 종류의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일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야 내가 컴퓨터 공학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나는 컴퓨터 공학으로 할 수 있는 게 게임으로 사람들을 망치고, 안 그래도 삭막한 사람들을 더 삭막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괴로웠었다.
나는 가난한 나라를 가서 그 나라를 먹여 살릴 인재들을 키우고 싶다. 나를 통해 컴퓨터, 그리고 정보산업의 첨단 기술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나라를 먹일 산업들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의대를 포기하고 공대에 온 것은 이를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비전이 있기 전까지 공부의 원동력은 질투나 자존심, 독기라고 생각해왔고 과외 등에서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도 그렇게만 말해왔다. 이제는 그 딴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나를 움직임을 느낀다


7. 나는 동아리 선후배들과 이곳에 함께 왔다. 머리에는 평생 쓰지도 않던 비니모자를 쓰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을 항상 즐겁게 해주고 웃게 해주던 나였는데, 그 날 따라 사람들에게 할 말을 쉽사리 찾지 못한다. 어색하게 사진이나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 입영장정 여러분들은 입소식을 위해 연병장 중앙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뒷걸음질쳤다. 여기까지 와준 고마운 사람들의 눈을 한 사람 한 사람 맞추고나서, 연병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수십번 양 손으로 뺨을 찰싹찰싹 치며 다짐했다.

- 신행아, 여기서부터는 정신차려야 해. 730일만 참자.


8. ‘오페라의 유령’이 끝났다. 만난 이후 한번도 놓지 않고 있던 꽉 잡은 손이 새삼 느껴졌다. 불편하다는 그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체 하며 버스 정류장까지 나왔다. 크리스마스의 밤은 야속하게도 이미 어둑어둑했다.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난 네가 오페라의 유령처럼 얼굴이 망가지더라도 끝까지 사랑할꺼야. 안 떠날꺼야.
- 하하하하. 그게 뭐야? 난 영화보면서 나는 널 위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 바보, 난 나를 위해 죽어주는 사람보다 나를 위해 살아주는 사람이 더 좋다. 메롱아

하지만 내 마음이 오페라의 유령의 외모보다 더 추하고 이기적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같다.


9.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입시에 관한 카페이다. 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꿈. 이제 겨우 그 꿈의 첫 발을 디딜려고 하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의대진학을 포기해 줬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어제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첫번째 편지는 그런 편지였다.
누구든 좋으니까 아버지의 뜻에 동의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게시물을 하나하나 읽어본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의대를 포기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일초도 눈을 감지 못한 밤을 꼬박 세우고 나서 일에 나가기 전의 아버지한테 공대로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것처럼 세상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고 꿈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힘든 일이 있으면 분명히 부모님이 도와줄 것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같다. 그런 식으로 응석부리고 있었지만, 이 날 이후 내 삶은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0. 자기 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나를 지금껏 지나간 추억들, 잊을 수 없는 순간들, 나를 만들어 간 기억들을 글로 옮기다가 글이 너무 슬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누가 읽겠냐며 완전히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나서

- 하지만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는 나를 사람들에게 짧게 소개하는 것은 항상 무리였고 그래서 언제나 ‘나’를 소개하기 보다는 ‘나의 소속과 역할’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같다

라고 다시 적고 그런 글을 완성시켰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다. 잠깐 차를 마시러 밖으로 나갔다.
돌아와서는 얼른 ctrl키와 z키를 누르고 따로 저장해놓는다.


11.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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