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소사무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일생을 재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며
이 소설에서 나타난 것처럼 작가 역시 여러번의 시도를 통해 결국 자살한다.
이렇게 먹먹한 책이 있단 것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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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좋으니 웃게 해주면 되는거다.
뭐가 좋냐고 묻는 순간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 따위 없다는 생각이 꿈틀거렸습니다.
나는 이른바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원래 인간에게 호소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진실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참으며
계속 익살을 부리는 것 외에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서로 기만하고,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심지어는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참으로 능숙하고,
그야말로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의 생활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익살을 발휘해서 나날이 반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남이 죽여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은 몇 번인가 있었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끔찍한 상대에게 오히려 행복을 안겨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불안
여자에 대해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리무중에 때때로 호랑이 꼬리를 밟는 실수를 저지르고
지독하게 깉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건 또 남자에게 맞은 채찍과는 달리
내출혈처럼 극도로 불쾌하게 안으로 퍼져 나가
좀처럼 치유되기 어려운 생채기가 되었지요.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한답니다.
포근한 솜으로도 상처를 입을 정도이지요.
행복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 겨우 그것뿐이야?"
나는 자살할 기력조차 잃었던 거지요.
"그쪽은 상당히 고생하며 자란 분이군요. 가엾게도 눈치가 빠른 걸 보면"
농담이 아니야, 정말이야
"하지만 너의 주색잡기도 이 정도에서 끝나겠구나,
더는 세상에서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지."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 노예에게 어울리는 방법으로 즉각 보복한다.
덧없는 기도 따위 멈추지 그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일 따위 내팽겨쳐라.
수상쩍다, 하루 사이에
변해버린 마음이여
희극에 비극명사를 하나라도 집어넣는 극작가는
이미 그것만으로 낙제다.
나는 예전부터 인간의 자격이 없는 듯한 아이였고
호리키마저 경멸하는 게 지당한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죄의 반대말은 뭐지?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순간 머리 한 구석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더니 퍼뜩 무언가가 떠올랐습니다.
만일 그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동의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반대말로 생각하고 배열했다면?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인가?
그 아내는 지니고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성품 때문에 더럽혀졌습니다.
더구나 그 아름다운 성품은
남편이 일찍이 동경하던 순진무구한 신뢰심이라는
한없이 가련한 것이었지요.
나의 불행은 모두 나의 죄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누구한테도 항의할 수 없고
또 우물거리며 한마디라도 항의 섞인 말을 건네면
세상들이 입을 모아 용케도 그런 말을 한다며
어이없어할게 분명합니다.
나는 속되게 말하는 '제멋대로인 사람'인지 아니면
반대로 기가 너무 약한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죄악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스스로 점점 불행해지기만 하고
막아설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습니다.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죽어야 한다. 살아있는 게 죄의 씨앗이다.
신에게 묻는다. 무저항은 죄인가?
인간, 실격.
이미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아뇨, 울었다기보다... 안되는 거죠. 인간이 그렇게 되어서는, 이제 틀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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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그렇게 먼 남 이야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