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대한 소고'에 해당되는 글 28건

  1. 적벽대전2 - 최후의 결전 (★) 2009.04.24
  2. [Shack] Book Review 2009.04.20
  3. 아내가 결혼했다 (★★★) 2009.03.20
  4. 황금 물고기 리뷰 2009.03.14

사실 적벽대전1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감상을 말할 때 재미있었다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말도 없지만 말이다.

연의에서 제갈량에게 눌려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주유의 재평가도 신선했고,

특히 조조군과 지상군끼리의 싸움을 통해
통해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사실 감이 잘 잡히지 않았던 
진법에 관한 부분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사실 조운과 주유의 캐스팅은 별로였지만,

(영화 속에서 조운은 너무 동네형처럼 생겼고, 
주유는 삼국지에서 몇 안되는 '미'의 별명이 붙은 사람과는 거리가 먼 강인한 인상이었다.) 

관우와 제갈량의 그것이 너무 좋았기에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사실은 삼국지연의에서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여 묘사한 적벽대전을 그린 [적벽대전1]과 
조운의 일대기를 가상으로 극화해서 그렸던 영화인 [삼국지 : 용의 부활]을 비교하는 포스팅을 쓰려고 하기도 했었다. 물론 게으름에 져서 하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적벽대전2는 여러가지 면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심하게 기대하고 있던 나로서는 이가 갈릴 정도의 일이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나올 수도 있으니 
영화를 볼 생각이라면 더이상 읽지 않아도 좋다. 
사실 삼국지연의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전쟁의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비주얼로 승부를 봐야만 했다.
트로이나 300을 능가한다고 광고했던 비주얼은 만족스러웠으나,
안 그래도 이미 판타지 소설인 삼국지연의 자체를 심하게 왜곡해서
아예 말도 안되는 만화가 되어져버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1. 조조의 진영에서 남방의 기후와 선상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병사들이
병이 걸리게 되고, 조조는 그 병으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동오로 보낸다.
그리고 그 시체에 접촉한 동오의 병사들도 병에 걸리게 된다.
말도 안 되는게 평생을 남방에서 살았던 남방의 병사들이 
풍토병에 걸려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다니.
그러면서도 주유는 "저들이 저런 더러운 수를 써도 나는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다"
라고 하면서 계교를 써서 채모를 죽이고 제갈량을 이용해 화살10만개를 속여 빼앗는다.
대인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조조의 진영에 무려 손권의 여동생인 손상향(...)이 첩자로 잠입한다. 
게다가 손상향은 조조 진영의 정보를 비둘기를 통해서 주유와 제갈량에게 전달하는데, 
이는 마치 해리포터의 부엉이들을 보는 듯했다.
손상향은 마치 야자를 째는 고등학생처럼 담을 넘어서 조조의 진영으로부터 도망쳐서
무사히 귀환한다. 
조조군의 진영의 지도를 가져왔는데, 무려 몸에 감아왔다.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옷을 벗고
소교보고 끝을 잡으라고 한 후 몸을 빙빙돌려서 지도를 펼치는데,
작가가 기네스 펠트로 팬인지 [셰익스피어 인 러브] 패러디를 하는 모양인데,
손상향의 얼굴이 안습이라 보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차를 마시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번 한 후에야 
다시 삭발을 하고 싶은 욕망에서 겨우 벗어났다. 
OME(Oh my Eyes!!!)

3. 조조는 지가 어리석어서 주유에게 속아 수군사령관인 채모와 장윤을 죽여놓고
주유의 진영에서 밀서의 복사본도 아닌 원본을 구해서 온 장간을 죽인다.
물론 연의에서도 비슷하긴 하지만 조조는 장간을 벌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간을 죽이는 방법의 비열함인데,
파티를 열어놓고 장간의 술에 독을 타서 죽인다.
조조는 중국 대륙 최대권력자이고 장간은 그냥 찌질이 87급 공무원 쯤에 불과하다.
귀향을 보내거나 사람을 시켜 목을 베면 될 것을,
마치 노예가 왕을 암살하듯이 
몰래 들킬까봐 숨어서 음식에 독을 탄다.
조조의 찌질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라면 너무나 심했다.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4. 동남풍이 불 때까지의 조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주유의 아내인 소교가 조조의 진영에 투항한다.
기껏 투항한 소교를 데리고 희대의 호색가라는 조조는
고작 소교와 차를 즐기다가 적벽을 공격할 타이밍을 놓친다. 

5. 제갈량이 조조에게서 화살 10만개를 얻어오는 장면.
삼국지연의를 볼 때는 여기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었는데
실제 영화를 보니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상대편에서는 화살을 단 한 개도 쏘지 않는데, 
조조군은 화살을 10만개나 쏟아부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뭐 사실 이 이상 어떻게 할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6. 아무리 그래도 손권군은 고작 3만이고, 조조군은 100만이다.
화공에 성공했다고 해도 한 지방의 군주인 손권이 최전방으로 나와서 
칼부림을 하는 것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손권이 죽으면 오나라는 끝인데 무슨 짓인가 싶었다. 

7.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하후돈이 소교를 인질로 잡는다.
갑자기 삼국지 3대 대전 중 하나인 적벽대전이 (나머지는 관도전투와 이릉대전이다) 
일개 인질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나라 장수들은 얼음땡.
처음부터 그럴 것이었으면 조조는 왜 소교를 인질로 활용해서 오나라를 압박하지 않았을까?
뱃머리에 매달고 진격했으면 되잖아! (너무 잔인한가?)
 
8. 결국 희대의 인질극은 실패하고, 조조 홀로 남는다.
그리고 한나라의 역적 조조 앞에서 
(나는 그닥 조조를 역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영웅으로 생각하지만)
쿨가이 주유의 한 마디.
"가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무슨 동네 불량배 훈방조치 하는 경찰도 아니고...
대인배들은 그냥 다른걸까?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설정들로 인하여서
영화를 보면서 손가락이 손바닥을 찌를 정도로 손과 발이 오그라들었고,
이것을 본다고 3시까지 자지 못했던 게 서러워져서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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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평 - 조조가 Fika(스웨덴 말로 티타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하다가 전쟁을 그르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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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듣고 있는 영미 문학 수업, 중간 리포트이다. 
리포트라고 하기에는 조약하기 짝이 없지만, 
블로그에 들어올 때마다 내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기 위해 일단 블로그에 올린다.



The Shack Book Review

By Benjamin Kang


A brief summary of the story 

 When a whole country was hit by hailstorm and every affair was stopped, Mackenzie, a main character, found a note in his mailbox. 

  Mackenzie,
 It’s been a while. I’ve missed you.
 I’ll be at the shack next weekend if you want to get together.

 It made him very upset. It’s because papa was a name which his wife, Nan, used to call God and the shack which is referred here is where his lovely young daughter Missy was kidnapped and murdered by a serial killer years ago. At that time, while Mack was attempting to rescue his other children from the torrent, Missy disappeared. Mack solicited God for a help and prayed. However, God maintained a silence and looked on when the serial killer committed a terrible crime. Thus the shack is the place of The Great Sadness to Mack. After a painful time, Mack decided to visit the shack without telling his wife.
 Mack met  Papa, Jesus, and Sarayu there. At first, Mack couldn’t believe all that happened and couldn’t forgive God. 

  “If you couldn’t take care of Missy, how can I trust you to take care of me?”

 Nevertheless, Mack shared meals with them, took care of a garden with them, learned the relationship and love with God, realized that the world can be improved not by rules and authorities, but by relationship. Mack appreciated that the right to decide what is good and evil on his own term is meaningless, and he had judged God as he had done the others. Finally, Mack forgave his father who abused him, and the murderer who killed his daughter. Finally, a gash in his heart had been healed and The Great Sadness had disappeared.  

Discussion of matters of particular – Meeting God in person?

Meeting God must always be an exciting incident. Thus it’s not rare to find in the other literatures that a protagonist meets God in person, and then he generally gets healed and recover relationship with God and forgive a mean antagonist. For example, In  Dinner with a Perfect Stranger, you can find a similar plot to the Shack. Therefore, a basic idea of this novel is that neither of creative nor originative. Like Moses in the old Testament, Meeting God in person has been a historically long expectation of many Christians. Moreover, by this literary technique, we can break a wrong, prejudicial image of God, such as cruel, ruthless creator who burned two cities in a day, even tried to destroy the earth with flooding. 
However, a common problem of these kinds of literatures is that the author is not a real almighty God. No matter how hard we try, we can’t understand God perfectly. We can only guess God’s thought For instance, “Why God looks on the death of the children in the Africa?” The author tries to suggest some answers by talking through God’s mouth in the novel, but the answers should be incomplete. 

A brief evaluation.

 First of all, The symbolic meaning of the shack is utilized effectively. The shack was the place of pain where Missy’s blood stains still left. In fact, all we have the painful place in the deepest part of the heart where we buried our secret, gash, and ignominious memories. The shack in the novel is materialization of that place. That was very amazing that Mack is reconciled with God in the shack. It was very surprising that God is not only the creator who we have to praise and say thanks to in the joyful place, but he is also with us in the shack as well. It seems to be less affecting if the novel happened in the other place. In my opinion, the non-Christians can read this novel without any trouble like Christians can. They could recover the broken image of God. In particular, if I give this book as a present to my friends who got hurt and left a church, they can get recovered by reading this book while sympathizing with Mack.
 I love the last part of the book. The author didn’t overemphasize the change of Mack. Instead, the novel is concluded after Mack resolved his daughter Kate’s quilt. It’s because Kate thought that Missy was dead because of her. However, if I were the author, I would delete the part that the murderer got arrested finally. That’s not necessary. 
 When I read a book, the most important value is whether a current book makes me to read continually without a distraction. In this view, the book doesn’t get a good point. It had a quick running speed until Missy was murdered, but after Mack arrived at the shack and met God, a flow of story was stuck. After this point, the story went on not based on events, rather based on conversations and descriptions which are quite boring.
 Moreover, God used to avoid answering directly and alludes to Mack’s questions like many politicians generally do when they encounter very sensitive inquiries. Therefore, their answers are so difficult and hard to understand. In the novel, Mack didn’t understand many times what God said. I experienced same feelings with him.
 Furthermore, I could find a typical mistake that we can see in these kinds of novels. I’d like to call this “The-evil-character-has-one-night-dream-and-his-philosophy-is- converted-at-a-time.” plot. In this novel, Mack spent three days with God recovering the Great Sadness. In particular, it was very affecting that Mack forgave the murderer, but It seems to be so rapid. Actually, in the Shack, although the author tried to express his change by the continuous step by step conversations and sharing with God, Mack was persuaded so quickly without enough reasoning.
 Overall, this novel has integrity, and it is well-written. The author, William Pole Young, experienced the sexual harassment by the natives where William’s parents devoted themselves to a mission. This personal experience really seems to affect this novel is more persua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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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정말 화재가 되었었던 이 영화를 
나는 올해가 되어서야, 그것도 이 먼 타국에서 혼자 보았다.

사실 언젠가 인문학글쓰기 수업에서 이 작품, 
그 때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일부일처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어차피 사랑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면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

결혼을 하더라도 배우자의 마음을 구속할 수는 없다는 의견들.

결혼이라는 제도 내에서 
육체적, 화학적인 사랑이 아닌 
더 성숙한 사랑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이게 나의 의견이었다)

오히려 일부일처제의 약점을 반박하는 의견들이 강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히 나조차도 일부일처제를 옹호할 수 있을만한 의견들을 찾지 못했다.

"간통"도 일부일처에서는 "간통, 불륜"이라는 오명 하에 
막장드라마의 소재로만 쓰이고 있지만
일부일처제가 법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면,
그저 또 결혼해 버리면 그만이다. 
간통이고, 불륜이고 하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오래된 말은 아닌 것이다.

예전에는 일부일처제가 "성경적"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다처를 거느리고 있었던 아브라함이나 야곱, 다윗의 예를 통해서,
사실 일부일처는 성경을 통해 규정되었다기보다는
국가나 군대처럼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계약에 통해서 성립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혼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저 계약의 하나일 뿐인 것일까?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사랑하고, 누구와 헤어지고... 
무한히 반복되는 이 사이클.
한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고
이 모든 일들에 들어가는 감정과 비용이 엄청나기에,

그저 연애의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게 결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것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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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평.
착상의 기발함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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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1997)

르 클레지오 장편소설
최수철 옮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르 클레지오
그의 손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눈부신 성장기"

아프리카 소녀 라일라.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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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녀는 흑인 소녀이다.
어렸을 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주 어렸을 때 인신매매를 당했고,
그리하여 랄라 아스마라는 에스파니아계 유대인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죽자, 그의 딸을 피해 도망가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갈등과 도망의 시간들이다.

어딘가에서 잠깐 정착하지만
곧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라일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어디론가로 떠난다.

이 짓을 프랑스, 미국에 이르기 까지 하다가 
결국 고향, 혹은 고향으로 추정되는 곳 "목적지"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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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책을 쉽게 놓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내가 노벨상 수상자 작품에서 원했던 것은 '책을 쉽게 놓지 않게 하는' 매력이 아니다.
그런 것을 원했다면 대중작가들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게 훨씬 나았겠지.

가해자와 사건이 벌어지는 도시나 국가만 변할 뿐,
모든 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라일라의 반응은 단 하나. "도피"뿐이다.

끝자락에서는 고향에 다달음으로 이제 행복이 시작될 것처럼 묘사해놓았지만
고향에서도 결국 갈등을 겪으면 도망치게 될 것이다.
유토피아, 그리고 그녀의 가나안 땅인 그곳에서 도망친다면
그녀는 더이상 발붙일 곳도 없고, 희망도 없게 되겠지.

상처에 딱지가 앉기 전에 상처를 또 내고,
부러진 다리로 계속해서 똑바로 걷고,
죽어가는 중에서라도 내 피를 마시고 다시 일어나야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수없이 확인했듯이,
갈등에서 도망치는 것은

내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 화염을 피해서, 다른 방으로 가버리는 것과 같다.
얼른 물을 끼얹거나, 119를 부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도망가버리면,
결국 집과 함께 불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줌 재가 되어버릴 뿐이다.

결국 불꽃은 내가 어디로 도망가더라도 끝까지 쫓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행의 경우에, 행운보다 더 집요하게 쫓아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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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음악과 고향이라는 소재를 활용해서,
그녀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이 있긴 하지만,

음악의 생산보다는, 대중음악의 소비에 친숙한
인구 천만의 도시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는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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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고쳐쓰고 싶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눈부신 도망기".
내 생각에 이 소설에서 '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덧1.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에 대한 비평은 언제나 환영한다.
덧2. 처음에는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와의 비교를 바탕으로 비평을 쓰려고 했으나, 
그런 수고를 할만한 가치가 없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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