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대한 소고'에 해당되는 글 28건

  1. 꼭두각시 서커스 (★★★★★) 2 2009.08.06
  2. 090513 장영희 교수 소천. 1 2009.05.14
  3. 에반 올마아티 (★★★★) 2009.05.01
  4. 말할 수 없는 비밀 (★★) 1 2009.04.29

사실 이번주 내내 이 만화책에 빠져서 허우적대면서 살았다.
누구는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같다고
"죄"에 가깝게 생각하지만
나에게 만화책은 문체가 좀 더 편한 문학작품일 뿐이다.

위의 사진은 이 만화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시로가네의 미소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여자의 미소 때문에
이 43권에 달하는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다.
40권이 넘어가서야 이 여자는 처음으로 저렇게 웃는다.

동화책에서나 볼 만한 "공주(혹은 전유성)를 웃겨라"의 이야기같지만,
모든 한 장면, 한 장면은 만화에 나오는 자동인형들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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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을 좋아하는 한 중국인 형제(형은 진, 동생은 인)가 있었다.
그들은 더 나은 인형극을 보이기 위해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했고
결국 체코의 프라하에 와서 유명한 연금술사의 제자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두 사람 모두 프란시느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프란시느는 진을 더 사랑했고, 결국 둘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인은 그것을 견딜 수 없었고 프란시느를 납치하여 도망간다.
수년이 지난 후 진이 인을 발견했을 때에
프란시느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구금되어 있었고,
프란시느는 결국 스스로 불을 질러 자살한다.

프란시느를 잊지 못한 하지만
프란시느의 사랑을 결국 얻어내지 못한 인은
프란시느의 인형, 살아있는 자동인형을 만들어내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전혀 웃지 못한다.

그리하여 인은 다른 자동인형들을 만들어
프란시느를 구금했던
마을의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복수를 하기도 하고

"남을 웃기지 못하면 죽는 병"인 조나하병을 만들어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프란시느를 웃게 만들려고도 하지만

여전히 프란시느 인형은 웃지 않았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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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길이의 만화책인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우주 최강이라던 프리더를 죽인 후에도
질질끌면서 셀과 마인부우가 등장했던 것과는 다른.

마치 첫 권의 첫 스케치를 하기 전부터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머리 속에서 구성되어 있었던 것같은 완벽함.

나같이 한가한 사람은
꼭 시간을 내서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만화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두근거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익숙한 모습.
내 아이디.

피에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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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엄마" -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말.

"영희야 수고했다, 우리도 너를 위해 기도하마. 영희야 안녕” -  서강대 손병두 총장

“불이 꺼지지 않은 장 교수의 연구실을 항상 그냥 지날 수 없어 5분만 있겠다고 하다가도 1시간씩 남아 수다를 떨었다” - 신숙원 명예교수

“영희야 사랑한다, 고맙다. 못난 오라비를 용서해라” - 오빠 장병우 씨

장영희 교수님이 암 투병 중에 작고하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소아마비 1등급 장애우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나에게는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5번도 넘게 읽었던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저자.
시로 영어를 공부하겠다며 깝치고 있을 때 서점에서 반갑게 발견했던 [생일]과 [선물]의 저자.

많은 사람들의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는 슬픔일지도 모르지만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 분이
말 한 마디, 메일 한 줄 섞어보지 못했던 이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왜 내가 키보드 위에서 손이 무너져 내리고
눈물까지 내면서 슬퍼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그 글이 내 가슴에 벅차게 차올라 있었던 것이겠지.
그 삶이 진실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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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 같던 사람이 죽으면서 가장 가슴 아파한 것은
결국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회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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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낭만주의 수업 시간에 이유영 선생님은 칠판에 거대한 원을 그려놓고
[푸른 꽃]의 복잡다단한 상징체계를 설명하고 계셨다.
우리도 노트에 그림을 옮기느라 교실이 아주 조용했는데
누군가 뒤에서 길게 한숨짓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선생님은 갑자기 홱 돌아서시더니 소리치셨다.

"누구야! 지금 한숨 쉰 사람 누구냐고!!"

떠들어도 별로 야단을 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반응은 너무나 의외였다.

"지금 몇 살이야, 예순? 일흔? 한숨 짓는 것은 포기하고 싶다는거야.
한숨짓는 것은 싸움에 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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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라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늙고 병들고 불구자가 된 것이 내 허물은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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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이 되던 해 여름, 일찍 찾아온 장마 때문에 세 번 결석한 내게
교수님은 당신이 한 말씀을 잊으시고 내게 가차없이 F를 주셨다.

(장애우인 교수님은 비오는 날, 
비포장도로를 지나 그 수업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러던 중 넘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교수님을 보고
비 오는 날은 오지 않아도 결석으로 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의 충격은 컸다. 교수님의 대한 원망, 억울함, 부당함,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F라는 굴욕적인 점수를 내 성적표에 담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또 과목 낙제를 하면 다른 과목 성적이 좋아도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학칙 때문에 
그 학기에 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당시 영문과 과장님이시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갔고,
내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신부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셨다.
너무나 화가 나서 얼굴은 빨개지고 말까지 더듬으셨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수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닌데..."

그리고 나는 그 때 분명히 보았다. 신부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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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기절하면서도 시를 읽는 어리석음이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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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슨 일인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서 울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나를 발견한 그 여자는 갑자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저 봐, 에비 에비. 너 계속 울면 저 사람이 잡아간다"

하는 것이었다. 나를 흘끗 올려다본 아이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울음을 그쳤다.

--- 이상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발췌.


한번 암을 이기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암에 지지 않으시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가족력은 어찌할 수 없나봐요.

메일 한 줄 보내서 
책 잘 읽었어요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을텐데

수고하셨어요. 푹 쉬세요. 

2008년 7월 27일 비행 중에 책 위에서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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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화니 개봉한 지 상당히 오래된 영화지만,
옛날부터 두고두고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스웨덴 전체는 현재 봄맞이 축제 중이고, 
그것을 핑계로 삼아 또다시 시간의 사치를 부려보았다.

그리고 영화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방에서 혼자 부끄러울 정도로 크게 웃었고,
차를 마시다가도 몇 번 뿜을 뻔했다.
역시 난 슬랩스틱 코미디가 재밌는 거 같다. ㅋㅋ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잘 제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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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나 물어보도록 하죠.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고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누군가 가족이 좀더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뿅 하고 친밀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해줄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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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하나님이 당신을 특별히 선택했다고 확신하죠?"
"그 분은 우리 모두를 선택하셨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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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반이었다면, 
내가 방주를 만드는 내내 줄창 비웃던 사람들을
방주에 태울 수 있었을까?

"에잇, 봐라 결국 내 말이 맞지? 이를 갈며 죽어가라!"

라고 외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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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오랜시간을 함께 보낼 그 분을 만나면,

"내가 방주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믿어줄 수 있겠어요?"

라고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대답으로는

"그럴 수 있도록 앞으로 신뢰를 쌓아가도록 해요"

도 괜찮고,

"응, 그대가 선택하고 결정했다면 
내가 잘 모르는 좋은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는 더욱 더 좋은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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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골라내자면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결말 부분으로 치달으면서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방주를 지으면서 에반은 갑자기 선지자가 되어버렸고,
홍수의 범위나 홍수의 결과가 급하게 처리되어버렸다
물론 전지구를 덮어버리는 홍수가 되어서 인류가 멸망해버린다면
영화가 갑자기 너무 진지해져 버리겠지만 말이다.

사실 하나님은 노아의 대홍수를 일으키신 후에
(노아의 대홍수라는 말도 참 이상한 말이다.
노아가 홍수를 일으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지개를 언약의 징표로 삼으시며
다시는 물로서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다.(창 9:11)

그래서 영화에서도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일까?
하하하

하여간에 이 영화는 조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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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9년생, 30살의 나이로 
감독 겸 각본 겸 음악감독 겸 배우로서 고등학생 연기까지 해준 
주걸륜에게 먼저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보아하니 피아노도 대역을 쓴 게 아닌 4살부터 피아노를 쳤었다는 본인이 직접 친 듯하다.
확실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단하다.

자 그럼 이제는 비평할 때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피하고 싶으면 읽지 않아도 좋다.

잘 나가다가,
분위기 좋다가,

갑자기

영화는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 한 영화였다.
어쩐지 계속 힌트를 주더라...

스토리 자체는 [동감]을 떠올리게 했고,
반복해서 나오는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쎈빠이를 떠오르게 했다.
주걸륜만이 여자주인공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은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를 닮았다.
책상 위에 화이트로 글씨를 쓰는 모습은 
[프리퀀시]에서 과거의 아버지와 현재의 아들이 무선통신을 가지고 통신하는 모습과 유사했고,
마지막에 포크레인이 건물을 부수는 모습은 [꽃보다 남자]의 발CG를 벤치마킹한 듯하다.

하지만 걸출한 미모의 배우를 발견했음에 영화를 본 보람을 느낀다.
이름은 증개현 (曾愷玹 , Alice Tzeng), 나랑 동갑이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듯하다.

주걸륜마저도 키스신은 주연 여배우와 한 게 아니라
이 아이와 하더라!! 무서운 놈. 이걸 노리고 각본을!!!!


그녀는 사실 조연이긴 했지만 그다지 큰 비중이 없었는데,
그 외모가 너무나 빛나서 주연으로 나온 여배우를 눌러버렸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공감할 수 없었던 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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