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굴'에 해당되는 글 427건

  1. 토끼굴660 - 숙제 2013.05.05
  2. 토끼굴659 - 글라이더 2013.05.04
  3. 토끼굴658 - 고향 2013.02.09
  4. 토끼굴657 - 그걸 누가 써 2012.12.10

토끼굴660 - 숙제

from 토끼굴 2013. 5. 5. 22:03




이별을 당하게 되는 사람은,

마치 숙제를 새로 받은 사람과 같다.


이제 그 사람을 포기해야 하는지

그 사람을 계속 붙잡아 두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경험에 따르면 결정할 때는 확고해야 한다.

평생 죽어도 다시는 다시 만나지 않겠다 정도의 각오가 있지 않으면,

이도 저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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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659 - 글라이더

from 토끼굴 2013. 5. 4. 01:48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은 마치 제트 엔진이 달려 있는 제트기와 같다. 

바람이 도와주지 않아도, 

새가 달려 들어 조종석 창문을 때려도, 

엔진의 힘으로 끄덕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랑이 사라진 커플은 갑자기 글라이더가 되어 버린다. 

이제는 관성과 바람의 힘으로만 날아야 한다.

바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휘청대고,

새에 부딪혀서 글라이더에 생채기라도 내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글라이더는 서서히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보지만,

사랑이 끝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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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658 - 고향

from 토끼굴 2013. 2. 9. 14:34

나는 고향이 없다.


물리적으로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은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따뜻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아니다. 


헌법재판관님들께서 꼴사납게도 관습헌법으로 '수도'로 '태초부터' 정해져 있다고 '선고'해주신, 서울이라는 도시는 익명의 도시이자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도시이다. 낯선 사람들끼리 처음 마주하는 자리에서, 클리셰스럽게, 고향을 물어볼 때가 있다. 이 때 역시 고향이 서울이라는 말이 나오면(4분의 1의 확률이다), 리액션으로 그저 "넌 서울 사람같아." 따위의 또다른 클리셰로 마무리된다.  익명의 도시이기에 누구나 익숙하고 궁금하지 않은 도시가 서울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 동해가 고향인 사람, 광주가 고향인 사람들. 그들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내가 바라보기에 그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이 있다. 아마도 나는 평생 가져보지 못할 그 감정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실향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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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657 - 그걸 누가 써

from 토끼굴 2012. 12. 10. 06:10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서, 그리고 박사 과정에까지 들어와서 연구를 하면서, 가끔(?) 좌절할 때가 있다. 그것은 지금 내가 하는 연구의 중요성을 의심할 때이다. 지금 하는 이 연구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순간, 작업의 정교함은 떨어지고, 의욕도 상실하게 된다. 흔히 말해, “이걸 누가 써?”의 demotivation이다.


애플 인사이드라는 책에서, 애플에 다니는 사람들은, 연봉이나 복지제도가 그들을 자랑스럽게 하고, 동기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장소를 가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아이폰이 그들을 동기부여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만드는 애플리케이션, 자신이 발견한 커널 상의 미묘한 버그 수정이 전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작업을 할 때, 그 정교함은 수준이 다르지 않을까. “나의 작업은 전우주에 존재하는 인류와 스마트폰들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새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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