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884건

  1. 서울대의 봄 2008.04.10
  2. [고야의 유령]을 보고나서 1 2008.04.10
  3. 인문학 글쓰기 - 자기 소개서 1 2008.04.09
  4. 제 18대 국회의원선거를 맞이하여 1 2008.04.09

서울대의 봄

from 끄적거리기 2008. 4. 10. 23:08

우리 서울대 캠퍼스에도 봄이 찾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약간의 스토리가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은 조심하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달에 한 개씩 영화를 보지 않으면 "손해"인
[CGV 영화요금팩]이라는 요금제를 사용하는 관계로 이번달에는
밀로스 포만 감독의 [고야의 유령]이라는 영화를 봤다.

밀로스 포만 감독은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천재와 평범한 노력파, 그리고 신의 대립이 날카롭게 그려진 [아마데우스]의 감독이다.

이번에는 격변기에 스페인에서 살았던 화가 프란체스코 고야를 내세웠다.
(위의 그림은 고야의 본인 자화상이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와 꼭 닮았다)

[아마데우스]에서도 모차르트를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내세웠지만,
사실은 살리에리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이번 [고야의 유령]에서도 사실 주인공은
고야도 그리고 나오는 두 남녀도 아닌 '역사'이다.

나오는 인물은 대략 이렇다.

돼지고기를 취향때문에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끔찍한 심문을 당하고 그래서
"비밀 유대교도"라는 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리디 어린 순수한 처녀 이네스.
그리고 이네스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그녀를 찾아가 그녀를 겁탈하는 로렌조 신부
시대에 대한 강한 실망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끝까지 이네스를 돕는 화가 고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교회와 종교의 시대.

 영화는 종교재판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대는 스페인 교회와 종교의 시대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유대교인으로 모는 살벌한 시대이다. 그리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악한 행위들은 놀랍게도 '주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영화 중에서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나에게 있어 이 부분이었다.

이네스의 아버지 : "어느 누가 그런 고문을 당하면서 거짓 자백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런 고문을 당한다면 제가 술탄이라고까지 자백할 것같습니다."

로렌조 신부 : "아니요. 그 사람이 결백하다면 주님께서 그에게 그 심문을 버틸 힘을 주십니다"

 상황을 다 생각하지 말고  그 신부의 말만 보자.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럴 듯한 말이고 같은 맥락으로 사실 나도 자주 쓰는 말이다. 상황이 어두워 보이고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주님이 꼭 힘을 주신다는 말. 고난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기회이자 오히려 선물이라는 말들.
 문제는 이 신부에게 그 믿음이 체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신부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자신이 스스로 살아낸 믿음이 아닌 '교회에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믿음' 내지는 '남의 믿음'일 뿐이다. 자신에게서 검증되지 않은 믿음. 예수님이 그 시대에 가장 화를 내셨던 부류의 사람들은 바로 이런 자들이었다. 자신이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치 자신을 할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며 이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이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 15:10)


2. 자유와 인권의 시대.

 그리고 영화 중반 이후 프랑스 혁명 이후의 나폴레옹군이 스페인에 들어오면서 스페인은 이른바 자유와 인권의 시대가 찾아온다. 이 두 단어에서는 우리는 꿈과 희망을 쉽게 느끼지만 이 시기의 고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살육의 시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사랑의 시대......인가?

 영화의 승자는 '사랑'인 것같다. 종교재판소에 수감된 지 15년만에 풀려난 이네스는 이미 정신이 나갔지만 자신이 낳자마자 교회에 빼앗긴 딸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누군가 혼란 속에서 잃은 바닥에 떨어진 아이를 보고 이를 잃어버렸던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인 신부 로렌조에게 아이를 보이려고 찾아간다. 로렌조는 사실 이네스의 인생을 망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누명을 써 아무런 소망이 없던 이네스를 같이 '기도'하자면서 유혹하여 몸을 허락하게 만든 사람이 로렌조 신부이다. 그런데 이네스는 15년 후 그를 찾아가 "당신은 내가 아는 단 한 명의 남자"라고 하면서 그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결국 로렌조가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처형당한 후 질질 마차에 끌려갈 때, 그 손에 입맞추고 쫒아가는 사람이 이네스이다.
 모성애와 그리고 첫남자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 이 사랑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공감도 되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마지막 그림은 역시 영화에서도 나오는 그림이다.
카메라는 아래쪽을 먼저 잡아서 인간들의 전쟁의 참혹함을 먼저 보여준 후
점점 시선을 그림 전체로 잡아간다.
이 모든 일에 배후에 바로 저 거인이 있었다는 듯이......

저 거인은 누구일까
,

1. 동아리 홍보를 하느라고 신입생 두 명과 밥을 먹고 헤어져서 허겁지겁 기초교육원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시간표를 꺼내서 ‘106호’를 확인한 후 문을 부수듯이 열며 강의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직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낯선 공기, 낯선 선생님, 낯선 얼굴, 낯선 성비(性比) 등등 무엇 하나 내게 익숙한 것이 없다. 지금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겠고, ‘ETL’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이다. ‘자기 소개서’를 이번주까지 작성하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한숨부터 나온다.

- 또..... 자기 소개서인가......

수강 취소를 할까 생각도 해보지만 수업을 추천해 준 친구의 말을 믿고, 그리고 이 수업의 느낌을 믿고 일단은 들어보기로 하고, 평생 한번도 만족스럽게 쓴 적이 없는 자기 소개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에 앉았다.


2. 친구의 조언을 기억하며 ‘인문학 글쓰기’에 수강신청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이미 꽉 차 있었다. 평소에 ‘초안지 플레이’라는 것은 그 수업의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여겨 왔기에 그냥 월요일, 수요일 오후 1시는 비워둘까하고 생각하다가 괜히 아까워져서 일단은 ‘몽골의 언어와 문화’를 꾹 눌러두었다. 혹시 인문학 글쓰기에 자리가 비면 꼭 끼어 들어가야지 생각하면서.


3.
- 이번에 TEPS로 대학영어 재껴서 안 들어도 될 것같아. 강의 추천 하나만 해줘. 학문의 기초로
- 너 글쓰기 수업 꼭 하나 들어라“
- 왜?”
- 일단 글쓰기 자체가 중요한 것도 있고 무조건 절대평가!!”
- 과목 이름이 뭐야?
-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 어쩌고 글쓰기인데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들어라. 인문학은 진짜 좋아. 네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 글쓰기 시키는데 그 때 아니면 또 언제 네가 글써보겠니?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서 1학년들이랑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
- 오호? 교수님 이름이 뭐였니?”
- 이상원 교수님. 짱이다. 포스 덜덜 ㅋㅋ 멋진 분이야”


4. 전화가 왔다.

- 형, 축하해요.
- 응? 뭐가?
- 형 오늘 전역하셨잖아요.
- 아 맞다!!!


5. 부대 출입증을 당직 부사관에서 넘기고 내 마지막 거수 경례를 했다.

- 단결!

별로 알고 지냈던 사이는 아니었는데, 마지막에는 왠지 안아도 보고 싶었다. 아니 내가 안기고 싶었던 것같다. 잘 살라는 당직 부사관의 덕담을 뒤로 한 채 숨기어 두었던 디카를 꺼내서 부대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한산하다. 다른 내 추억의 장소들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이곳 부대만큼은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출입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근무를 시작하며 내가 걸었던 땅들, 내가 드나들었던 건물들, 아침마다 수백번도 넘게 뛰어다녔던 구보 코스......
부대를 나설 준비를 끝내고 나왔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익숙해진 짧은 머리 위에 그리고 내 군생활 물품들이 다 담긴 캐리어 위에 곧 수북히 눈이 쌓여서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항상 눈은 성가신 것이었다. 여자친구한테 “눈 오면 신발이 젖기만 하고 짜증나”라고 했다가 애를 삐지게 한 적이 갑자기 기억이 났다. 눈이 오면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나 싶어 괜히 서글퍼진다.
그리고 정말로 부대문을 나섰다. 쾅 하고 부대문이 닫히고, 이제 나는 다시 저 1m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아니 사실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건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째서 뛸 듯이 기쁘지 않은걸까? 2년 내내 꿈꾸워 왔던 날인데.....


6. 일기를 쓰고 있다. 군대에 들어온 이후부터 전자기기와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일기와 여러 가지 종류의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일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야 내가 컴퓨터 공학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나는 컴퓨터 공학으로 할 수 있는 게 게임으로 사람들을 망치고, 안 그래도 삭막한 사람들을 더 삭막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괴로웠었다.
나는 가난한 나라를 가서 그 나라를 먹여 살릴 인재들을 키우고 싶다. 나를 통해 컴퓨터, 그리고 정보산업의 첨단 기술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나라를 먹일 산업들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의대를 포기하고 공대에 온 것은 이를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비전이 있기 전까지 공부의 원동력은 질투나 자존심, 독기라고 생각해왔고 과외 등에서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도 그렇게만 말해왔다. 이제는 그 딴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나를 움직임을 느낀다


7. 나는 동아리 선후배들과 이곳에 함께 왔다. 머리에는 평생 쓰지도 않던 비니모자를 쓰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을 항상 즐겁게 해주고 웃게 해주던 나였는데, 그 날 따라 사람들에게 할 말을 쉽사리 찾지 못한다. 어색하게 사진이나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 입영장정 여러분들은 입소식을 위해 연병장 중앙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뒷걸음질쳤다. 여기까지 와준 고마운 사람들의 눈을 한 사람 한 사람 맞추고나서, 연병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수십번 양 손으로 뺨을 찰싹찰싹 치며 다짐했다.

- 신행아, 여기서부터는 정신차려야 해. 730일만 참자.


8. ‘오페라의 유령’이 끝났다. 만난 이후 한번도 놓지 않고 있던 꽉 잡은 손이 새삼 느껴졌다. 불편하다는 그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체 하며 버스 정류장까지 나왔다. 크리스마스의 밤은 야속하게도 이미 어둑어둑했다.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난 네가 오페라의 유령처럼 얼굴이 망가지더라도 끝까지 사랑할꺼야. 안 떠날꺼야.
- 하하하하. 그게 뭐야? 난 영화보면서 나는 널 위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 바보, 난 나를 위해 죽어주는 사람보다 나를 위해 살아주는 사람이 더 좋다. 메롱아

하지만 내 마음이 오페라의 유령의 외모보다 더 추하고 이기적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같다.


9.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입시에 관한 카페이다. 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꿈. 이제 겨우 그 꿈의 첫 발을 디딜려고 하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의대진학을 포기해 줬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어제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첫번째 편지는 그런 편지였다.
누구든 좋으니까 아버지의 뜻에 동의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게시물을 하나하나 읽어본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의대를 포기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일초도 눈을 감지 못한 밤을 꼬박 세우고 나서 일에 나가기 전의 아버지한테 공대로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것처럼 세상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고 꿈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힘든 일이 있으면 분명히 부모님이 도와줄 것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같다. 그런 식으로 응석부리고 있었지만, 이 날 이후 내 삶은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0. 자기 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나를 지금껏 지나간 추억들, 잊을 수 없는 순간들, 나를 만들어 간 기억들을 글로 옮기다가 글이 너무 슬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누가 읽겠냐며 완전히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나서

- 하지만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는 나를 사람들에게 짧게 소개하는 것은 항상 무리였고 그래서 언제나 ‘나’를 소개하기 보다는 ‘나의 소속과 역할’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같다

라고 다시 적고 그런 글을 완성시켰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다. 잠깐 차를 마시러 밖으로 나갔다.
돌아와서는 얼른 ctrl키와 z키를 누르고 따로 저장해놓는다.


11. 그리고......

,
오늘은 선거일이고 덕분에 집에서 밀린 숙제와 공부를 하면서 보내고 있다.
나도 선거를 하러 가야 할 것같은데 일단은 도대체 누가 출마했는지를 모르니 방법이 없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먹고 자라난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만든 일등 제도 역시 선거다.
건국 이래 한국의 민주주의는 숱한 문제를 드러내 왔으나
냉전과 독재 시기에조차 한 번도 민주주의 기축제도인 선거, 복수 정당, 의회가
전면 폐쇄된 적은 없었다.
이 점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는 순간
한국의 큰 성취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의 기저제도를 유지해 온 이 점이야말로 한국이
다른 유사 국가군, 즉 식민 경험 국가들, 제3세계 나라들, 분단 국가들과 비교해
빠르게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핵심 요인의 하나였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책을 상당히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역사 소설이라면 한 자리에 앉아서 다 읽고 만다.
전쟁사도 즐겁지만 나는 정치사를 더욱더 즐겁게 보는 편이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주로 '6권 팍스 로마나'에서 책을 놓는다.
전쟁도 없고 계속 정치 이야기만 나오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6권을 로마인 이야기 15권 중에서 가장 아낀다.
아우구스투스의 놀라운 현실감각과 정치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것일까??????

카이사르가 시행했던 정책 중에 하나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리하여 카이사르는 자기가 로마 전통의 파괴자가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바로 뒤이어 아무도 상상조차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을
‘집정관 통달’이라는 형태로 실현했다.
집정관 통달은 라틴어로 ‘악타 디우르나’ 또는 ‘악타 세나투스’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日報’ 또는 ‘원로원의사록’이 된다.
원로원에서 이루어진 모든 논의나 토론이나 결의를
이튿날 포로 로마노의 한쪽 벽에 써 붙이는 것이다.
 구술 필기를 많이 이용한 로마 사회에는 속기술도 널리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있으면 쉽게 실현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세 학자들은 이것이 신문의 시초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CNN 같은 텔레비전 방송 기자가 원로원 회의장에 카메라를 가지고들어갔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이때까지 원로원 회의는 말하자면 배타적인 회원제 클럽 같은 것이어서,
토의나 의결은 닫힌 문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내용은 회의장에서 나온 의원들의 발언을 통해서나 민회에 제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일반에 알려졌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그것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유권자는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집정관 통달을 감행한 이유였다.
여기에는 아무도 반대할 수 없기 때문에 원로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악타 디우르나’ 제도는 원로원에도 타격이었지만, 특히 키케로한테는 커다란 타격이었다.
 
 작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키케로도 언제나 퇴고하는 버릇이 있었다.
글만이 아니라 발언도 회의장 밖에서 되풀이할 때는 반드시 ‘퇴고’를 했고,
친구 아티쿠스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필사본으로 내는 변론집은
상당히 공들여 고친 뒤에야 간행했다.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키케로가 변론을 맡았는데 결국 패소하여 마르세유로 망명한 인물이
키케로의 변론집에 실린 글을 읽고 이렇게 개탄했다는 것이다.
 키케로가 이 변론집에 쓴 것처럼 나를 변호했다면, 나도 이런 데서 물고기만 먹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CNN 같은 텔레비전 방송이 낱낱이 보도해버리면,
발언을 퇴고하거나 윤색하거나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편집’하여 전달해온 사람은 장사를 걷어치울 수밖에 없다.
‘일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카이사르는 원로원이 가지고 있던 특권 하나를 무너뜨린 셈이다.

우리 나라 국회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http://www.assembly.go.kr/renew07/info/inf/record_list.jsp?M_idx=1_01

여기에 가면 국회 의사록이 실려 있다. 읽기가 쉽지 많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뽑아 놓은 국회 의원들이
국회 지붕 아래서 최소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소심한 정보공개이다.
국회에서는 이런 의사록이 있으니 와서 읽으라고 홍보하지 않는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일단 눈치는 보이니까 공개는 해 놓았지만, 이 정보를 접할려면 특별히 노력해야만 한다.
공짜 신문도 펑펑 찍어내는 세상인데, 신문으로 찍어서
우리 나라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집에 이를 배달해주면 어떻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발견해 낸 기념으로 현실 정치에도 조금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